어린 시절 아버지의 목공소는 내 놀이터였다. 아버지가 대패질이나 톱질을 할 때 각종 목재들이 내는 냄새와 질감을 나는 기억한다. 아버지가 미송 판재에 몇 번 대패질하면 나무는 부드러운 속살을 쉬 내어준다. 톱으로 쓸면 그 나무는 달콤한 송진 냄새는 냈다. 나왕이란 목재는 단단하여 창틀을 만들고 가는 문살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이 나무를 만질 때는 손에 가시가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아버지가 내게 ‘목재 한쪽을 붙들고 있으라’ 거나 ‘저쪽에 있는 망치를 가져 오라’ 거나 하면 신이 났다. 4, 5학년부터는 아버지 대팻밥과 나무토막들로 채운 포대를 자전거에 실어 집으로 옮겼다. 그때마다 엄마는 ‘우리 새끼 큰 일했네’라며 땔감을 실어오는 둘째 아들을 추켜세워 주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아버지에게 말해서 긴 나무 지시봉을 만들어 오게 했다. 오 학년 담임선생님은 과학교육 기자재를 만들어야 한다며 연필로 그린 그림 한 장을 내게 줬다. 그림대로 아버지가 만들도록 말씀드리라 했다. 모스 부호 신호기 같은 것이었는데, 신호기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전구가 켜지는 장치였다. 아버지는 정성껏 그걸 만들어 드렸다. 선생님은 이걸 교사 과학교육 경진대회에 출품하여 상을 받았다. 자기 상 받은 것을 학생들에게 자랑했지만, 내게는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씀 전해라’는 식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남의 수고에 고맙다 하라고 배운 초딩 5년 차에게 선생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 목수 일을 무시하나?’ 싶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야구 방망이나 연실 물레를 만들어 주고는 그걸 갖고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준 튼실한 책상에서 공부했다. 온순한 형에게 내가 자주 달려들어 싸우면 아버지는 제과점이나 빵집에 데려가 어린 두 아들을 사 먹이면서 타이르곤 했다.
“한 손을 아무리 흔들어 봐라. 아무 소리 나지 않는다. 하나가 참으면 되는데, 둘이 똑같이 맞부딪히니까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형제간에 양보하며 살아라.”
자상한 아버지였다. 자라면서 늘 말썽을 일으키던 나에게 그는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이 없었다.
주거형태가 콘크리트 주택과 아파트로 바뀌면서 목재 창이나 한식 방문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형 가구 회사들이 브랜드 가구들을 생산했고, 문 공장에서는 규격품 도어를 양산했다. 아버지 같은 개인 목수는 수요를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무른 성격으로 모진 상대에게 손해 보기 일수였다. 한 번은 어느 제조공장에 창문과 문 제작을 수주받아 몇 달이나 일해서 납품했다. 그 회사는 차일피일 대금 지급을 미루다 나중에는 지급 금액을 반값으로 후려쳤다. 아버지는 속앓이를 하면서 순응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그런 아버지를 무능하다 여기고 퉁명하게 대했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했을 무렵 고혈압과 당뇨로 고생했던 엄마가 증세가 호전되자 텃밭에 배추씨를 뿌렸다. 이불에서 호청을 뜯어내어 빨고 풀을 먹여 봄날 햇살에 널어 말리고 다시 시쳤다. 그 며칠 후인 식목일 전날 밤 엄마는 쓰러졌고,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심하게 흔들렸고 무기력해졌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가 대학 입학으로 집을 떠나는 내게 셋방살이에 적당한 크기의 책상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내가 군대 갈 때 그 책상을 친구에게 물려주고 갔는데, 그 친구는 수년 동안 여러 번 이사하면서 떨어뜨려도 책상다리가 흔들리거나 부서지지 않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 그 책상이 단단했던 이유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군에서 포병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전, 내무실에 앉아 있는데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일찍 세상을 뜬 엄마보다 아내 잃은 아버지가 안쓰럽고 불쌍했고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동료들에게 창피해서 수건을 얼굴에 대고 한참을 있어야 했다.
아버지의 수많던 연장 중 두 종류의 직각자와 목재 고정 클렘프 몇 개를 나는 아직 갖고 있다. 가구의 내부 구조는 기본적으로 직각이다. 목수는 양 판재 모서리를 고정하고는 반드시 직각자를 대어 본다. 넓은 상판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개의 긴 송판 측면에 아교풀을 바르고 클램프로 고정한다. 결합된 판재가 반듯하게 평면을 이루는지, 서로 모서리를 연결된 두 판재의 각도가 직각을 이루고 있는지 아버지는 늘 직각자를 대고 점검해 보곤 했다.
아버지가 가구나 문을 반듯하게 잘 만들었던 만큼 나는 내가 해 온 일이 반듯했는지 되돌아본다. 나는 석사과정에서 심리학을, 박사과정에서 교육학 중 인적자원개발을 전공했다. 리더십 개발 전문가로 다양한 코칭 기술과 상담기법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 방식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내 아이들을 양육했는지 자신하지 못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 식민 지배에 대해 비폭력 투쟁을 이끌었고, 인도 국민에게는 자상한 아버지 “바푸”, 위대한 영혼이란 뜻의 ‘마하트마”로 추앙받았다. 간디는 그의 공적인 이미지와 달리 자기 가족에게는 희생과 순종을 요구하는 통제적 가부장이었다. 그의 장남 하릴란은 간디에게 반항하여 집을 나가 부랑자로 떠돌다 알코올 중독자로 죽었다.
내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간디보다 자상했고, 적어도 내게는 ‘바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