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사랑

by 양목수

이전에는 결혼 서약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문구가 흔히 들어갔다. 이 표현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가 저 생으로 건너가기까지 온전히 사랑할 것이라 결단한다. 사랑을 생각할 때 죽음 혹은 죽어감을 빼놓을 수 없다. 정신과 의사이자 숱한 사람의 임종을 관찰했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 과정임을 강조했다. 현대 의료시스템은 이런 죽음을 다루면서 환자를 용도를 다한 물체 취급을 한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로스는 환자 개개인에 자신만의 감정과 소망과 주장이 있고, 그것을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곧 떠날 사람 곁에서 그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사랑하는 자의 책임이다.


센드라 오코너의 사랑

센드라 오코너는 198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연방 대법원 판사가 되었다. 그녀는 재직 시 대법관들이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4:4로 맞서는 판결 상황에서 결정적 한 표를 행사함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여성이란 평가를 받았다. 유명 변호사였던 남편은 그녀를 외조하기 위해 모든 활동을 포기했었다. 남편이 치매에 걸리자 이번에는 오코너가 남편을 돌보려 2006년 대법관 차리를 물러났다. 남편은 오십사 년간 오직 아내만 사랑했던 기억을 잃어버리고, 요양원에서 만난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오코너는 그 여성을 질투하기보다 그녀를 통해 자기 남편이 정서적 안정을 찾은 것을 기뻐했다.


3년 뒤 남편이 세상을 뜨자 오코너는 웹사이트와 온라인 게임을 통한 시민윤리 교육과 알츠하이머 치유 전도사를 역할을 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2018년 10월 23일, 그녀는 자신이 치매 초기로 ‘공인의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음을 공표했다. 그녀를 대법관으로 임명했던 로널드 레이건도 1994년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을 공표했다. 퇴임 시 지지율 68%로 인기 높았지만 그의 모습은 국민들의 시선에서 멀어졌었다. 사회적 지위나 공로를 막론하고 일단 치매에 걸리면 삶은 서서히 혹은 급작스레 소멸된다. 그 과정을 배우자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박봉화 노인의 사랑

깔끔하고 착한 마음씨로 남편을 한평생 뒷바라지해오던 다섯 살 터울 아내 김경자 할머니는 1998년 치매에 걸렸다. 일흔일곱 살 된 남편 박봉화는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불로 조리하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식, 일식, 중식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아내의 끼니와 영양죽을 만들었다. 그의 이야기가 2001년 10월 8일, 처음으로 “인간극장”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나왔을 때, 그의 아내는 투정 부리다 큰아들을 보면 금세 표정이 밝아지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 년이 지나 KBS TV 프로그램 “아침 마당”에서는 아내가 남편 외에는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내가 참을성 없이 투정하는 것을 볼 때도 ‘아내가 귀엽다’고 말하는 박 할아버지 표정이 외려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2004년 10월 18일 “취재파일 4321”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치매에 관한 내용을 방영할 때, 박 노인은 같은 말을 했다: “옛날엔 날 해줬는데 지금은 내가 해주는 거지. 그때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겠지 뭐. 몰라 내가 그땐 귀여워 보였는지 몰라도 나는 이 여자 아주 귀엽다고.”

‘사랑해 온 기억을 까맣게 잊은 아내가 안타깝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안타깝다는 건 이제 과거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는 건데, 가능하지 않을 걸 지금 왜 생각해. 전혀 그런 거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제 그건 앞으로 뭐 희망을 가지고 이런 거 어쩌고 하지만 난 그런 희망 자체가 없어. 지금 현재가 제일 좋다 이거야.”

비현실적인 희망보다 아내가 있고 아내를 보살필 수 있는 현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그의 표정에는 비관적 기미가 없었다. 이 취재에서 그는 주중에는 매일 양평에서 서울 간을 왕복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치매 치료 프로그램에 아내를 참가시키고 다시 양평으로 데리고 오는 일을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박봉화 노인의 사랑은 구체적 행동이었다.


대소변을 참을 수 없는 아내를 양평장으로, 서울로 손을 잡고 다닌다; 액체 영양식을 개발하여 아내를 언제건 먹일 수 있도록 휴대한다; 길 가다 아내가 느닷없이 용변 보고 싶다면 주변 여자 화장실에 바로 데려가 바지를 내려주고 앉히고 닦아 준 다음 옷매무새를 바로 잡아 준다; ……


프롬은 사랑은 실현하는 힘이라 했다. 박봉화는 과거 기억에 매여 현재를 비관하지 않았다. 박봉화는 그의 아내를 불쌍한 치매 환자로 내버려 두지 않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여왕으로 섬기고 있었다. 만약 아내가 같은 상황에 빠진다면 나는 그녀를 이처럼 잘 보살피고 사랑할 수 있을까?


상실 이후

아무리 사랑해도 두 사람이 한날한시에 손잡고 세상을 뜰 가능성은 매우 낮다. 누군가는 먼저 가고, 홀로 남은 사람은 상당 기간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산다. 먼저 간 사람은 남은 사람이 슬픔에 빠져 우울하게 주저앉아 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등은 책, “상실 수업”에서, 먼저 충분히 슬퍼하고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울라 했다. 그리고 떠나간 이가 해왔던 것을 하라고 권했다. 샌드라 오코너는 그렇게 살았다. 남편을 보낸 후 사랑의 대상을 확대했다. 그녀는 웹사이트와 온라인 게임을 통한 시민윤리 교육과 알츠하이머 치유 전도사를 역할을 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2018년 10월 23일, 그녀는 자신이 치매 초기로 ‘공인의 삶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음을 공표했다. 마지막까지 자기 책임을 다한 삶을 살았다. 그런 인격을 갖출 수 있길 소망한다.


공적인 인물은 못되어도, 남은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이 원했던 일을 하면서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정신력과 실천 능력을 갖출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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