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목수 Oct 29. 2022

딜레마를 안고 가는 사랑

순수한 동기로 힘든 누군가를 한결같이 도왔다가 좋은 결실을 맺으면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한 장기간의 헌신에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베푼 사람의 노력과 삶은 헛된 것인가?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를 가슴에 안고 가는 사람, 40여 년 간 애정과 시간과 돈을 많이 썼지만 도움받은 사람들이 온전히 자립하지 못해 여전히 그들을 도와야 했던 한 미국인 은퇴 교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유학 가서 처음으로 학과 건물 복도에서 내가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한 백인 교수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온 줄 알고, 한국기업의 인재개발에 대해 자기 수업에서 발표해달라고 청했다. 그걸 계기로 나는 그의 첫 번째 한국인 박사 과정 학생이 되었다. 

 

1980년대 미국 대학들은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학습과 조직의 문화적 변화로 성과를 촉진하는 인적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이라는 프로그램을 대학원 과정에 설치했다. 내가 5년 동안 다닌 한 대학의 HRD 프로그램 순위는 탁월한 두 담당 교수의 능력으로 미국 대학 중 내내 최고 순위에 머물렀다. S박사는 그 분야의 유명 연구 논문상에 그의 이름을 붙일 정도로 인정받은 학자였다. M박사 역시 성인교육 연구단체인 “국제 성인 지속 교육 (International Adult Continuing Education)" 등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될 정도로 큰 공로를 남겼다. 그는 유명한 조직개발 컨설턴트이기도 했는데 3M, 카길, 포드 등이 그의 주요 고객이었다. 수십 년 동안 서로 경쟁하며 협력했던 이 두 교수는 그 스타일에 있어 매우 대조적이었다.
  
 S교수 주변에는 똑똑한 백인 학생들이 많았다. 영어가 시원치 않거나 똑똑하지 않으면 논문 작성 과정에서 그의 압박을 버텨내기 힘들었다. 그는 토요일 아침마다 실력 있는 대학원생들을 카페에 모아 한 가지 주제를 던져주고 토론하는 과정을 지켜보길 좋아했다. 그의 비평은 날카롭고 유익했으므로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이 모였다. S박사의 업적 중 하나는 HRD 교수를 많이 길러냈다는 것인데 그들은 모두 똑똑한 백인들이었다. 

 

대조적으로 M 교수 주변에는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의 제3 국 학생들이 모였다. 그는 주눅 든 학생이 더듬거리는 영어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힘을 다해 도왔다. 그는 기업 컨설팅으로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그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낳은 두 자녀가 있었지만 한국인 남매를 한번 입양했었다. 수년 뒤, 부부는 한국에서 서커스단에 팔렸다가 버려진 왜소증 남매를 다룬 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전북 무주 산골에서 정신장애를 가진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양육받지 못했던 이 남매 데려오길 망설이지 않았다. 그들 식구는 모두 여덟이 되었다.
    
 그 도시에 있던 큰 입양기관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던 심선생이라는 분을 어느 한인 모임에서 만났다. 심선생은 왜소증 남매의 정신과 치료와 양육에 M 교수 부부가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말했다. 입양 남매 중 동생이 중학생이 되자 부인은 그가 자립 능력을 기르도록 동네 마트에서 시간제로 일하게 도왔다. 그녀는 이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마트 매니저 역할까지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남매 중 정신지체 장애가 있던 누이는 직업학교에서 손발톱 미용 기술을 배우게 했다. 이 딸이 그 과정을 수료하자 교수 부부는 자기 집안에 아티스트가 한 명 생겼다고 자랑했다.

 

부부가 입양했던 네 아이들은 40대 성년이 되었다. 모두 대학이나 직업학교를 다녔지만, 넷 모두 어떤 의미로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해 서울에서 열렸던 어느 국제학회에 참석했다 돌아가는 그를 공항에 바래다주면서 그가 업데이트해주는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런저런 자녀문제를 말하면서도 그들을 결코 원망하지 않았다. 힘닿는 만큼 도움 청하는 자식들을 지원할 것이라 말했다. 


그의 부인은 모든 자식들이 성장한 무렵 설암에 걸려 몇 년 동안 고생하다 결국 별세했다. M 교수는 자기 집안 유전 병력으로 자신이 곧 시력을 잃을 것이라 말했다. 법적으로는 이미 시각장애인이 되어 차를 몰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행히 그는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나 재혼했다. 매우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그의 아내는 M 교수와의 즐거운 일상을 페이스북으로 자주 알린다. 길지 않은 남편의 뒤쪽 머리카락을 모아 말총머리로 만든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부부로 함께한 지 815일째에 올린 글에서, 그녀는 남편 인생에 대한 놀라운 경험을 소개했다. 아들네와 함께 영화를 보고 인근 식당에서 담소하고 있던 어느 저녁이었다. 옆을 지나던 한 무리의 사람 중 한 남자가 문득 “M 박사님 아니세요?”라고 외치며 그들 테이블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오래전 M 교수의 학생이었다는 그는 함께 온 가족과 친구들에게 M 교수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영향을 끼쳤는지 한동안 이야기했다 한다. 그녀는 노년에 만난 남편의 이전 삶에 대한 감동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수십 년간 친구처럼 지낸 벽안의 내 은사는 이제 팔순이다. 정신분석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자아통합(self-integrity) 대 절망(despair)”라는 심리사회적 관문이 놓여있다. 이 단계에서 “완벽하지 않았지만 내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서 후회하진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자아통합에 가까운 삶이다. “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가 있어”라며 자식들을 원망한다면 그 노년은 절망으로 기운 것이다. 남의 자식들을 거둬들이고 끝까지 수용하는 M 교수의 삶에서 자아통합을 본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딜레마를 안고 가는 사랑”을 나는 자아통합이라 정의한다.

 

이전 09화 밀러와 겐자부로의 선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