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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목수 Oct 29. 2022

길 위의 사랑

소설가 김훈은 그의 책 “밥벌이의 지겨움”에 담은 한 수필에서, 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고 또 무서워하는 물건을 자동차’라고 적었다. ‘자동차로 붐비는 거리에 나가보면 만인이 만인의 적이고, 일인 대 만인의 싸움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겁주는 판’이라 했다. 그런 살벌한 도로에서도 따뜻한 포옹이 있었다. 


2021년 9월, 어느 동호회 웹사이트에 차량 블랙박스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접촉사고를 당한 중년 여성이 당황한 20대 여성을 꼭 껴안으며 달래주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상대 차주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영상을 올린 사람은 젊은 여성의 남편이었다. 그의 아내가 둘째 아이를 싣고 응급실로 가는 중 급하게 차선을 바꾸면서 상대 차를 받은 것이었다. ’ 응급실로 가는 중인데 사고를 내 죄송하다 ‘는 말만 되풀이하는 아이 엄마를 중년 여성은 얼른 껴안고 주었다. ‘엄마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운전할 수 있다’고 다독이며 얼른 보냈다. 


당사자 홍영숙 씨의 인터뷰 영상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어느 접촉 사고 현장의 아름다운 포옹”이란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렸다. 홍 씨는 차가 받힌 상황에서 ‘매일 아침 장거리 운전하는 딸 생각이 났다’고 했다. 실지로 1994년생으로 자기 딸과 같은 나이였던 아기 엄마를 자기 딸처럼 여기고 안아 준 것이다. 그녀는 ‘당연한 행동인데 자꾸 감사하다 하니 오히려 부담스럽고 죄송하더라’ 말했다. 홍영숙 씨의 모성이 그런 순간적인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장편 소설, “분노의 포도”는 1932년부터 시작된 모래 폭풍으로 소출을 못내 땅을 은행에게 빼앗긴 오클라호마 소작농 조드 일가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조드 가는 캘리포니아에서 임금 노동자 800명을 구한다는 전단을 보고 쓸 만한 물건과 짐승을 팔아 낡은 트럭을 샀다. 대식구 12명이 좁은 트럭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떠난 3200km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길에서 조부모가 세상을 뜨고 나약한 맏아들은 도망쳤다. 어린 사위도 임신한 아내를 두고 달아났다. 


그들이 올라선 66번 고속도로는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 먹고는 살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으로 모여든 도망자들의 길이었다. 그들은 출발지가 달랐지만 서로 경계하거나 다투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면 그들은 잠자리와 물이 있는 곳 근처로 벌레처럼 모여들었다……저녁이 되면 이상한 일어 벌어졌다……. 스무 가족이 한 가족이 되고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전날 밤만 되어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줄 선물을 찾으려고 자기들이 가져온 물건을 뒤졌다."  (분노의 포도, p. 405, 406, 민음사)

스타인벡은 이 소설을 쓰기 전 신문기자로서 캘리포니아로부터 66번가 도로를 따라가면서 이주민의 실상을 취재했다. 그는 사람들이 절망적 상황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여전히 지니고 있음을 보고 소설로 전달하고자 했다. 


마침내 도착한 캘리포니아 상황은 이주민들의 희망과는 정반대였다. 일자리 쥔 농장주들은 밀려오는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했다. 노동자들이 연대할 기미를 보이면 깡패를 동원해 리더를 제거했다. 조드가 식구 모두가 목화를 따서 번 돈으로 겨우 밥을 해 먹을 수 있자 이번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만삭이던 딸 로저샨은 사산하고 말았다. 물이 넘쳐와 온 가족은 차와 가재도구를 버리고 황급히 높은 길로 올라가야 했다. 헛간 하나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헛간 구석에 늙은 사내와 그의 아들이 있었다. 남자는 병이 걸려 아들이 훔쳐온 빵도 삼키지 못할 정도로 기진해 있었다.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굶어 죽는다며 울었다. 


어머니는 로저샨에게 눈짓을 했다. 젖은 옷을 벗고 헛간에 있던 누더기 이불을 걸치고 있던 로저샨은 그 눈짓이 무얼 뜻하는지 알았다. 사람들이 나가자 로저샨은 겁에 질린 사내에게 다가가 그녀 젖을 물리고 머리를 받쳐주었다. 열여덟 살 산모는 아기를 잃었지만 불어 있던 젖으로 죽어가던 낯선 사내를 먹였다. 연약한 그녀도 생명을 품고 살리는 강인한 모성을 이미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시기의 사회 경제적 시스템의 하부에는 무질서와 혼돈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시대의 풍요를 끌어온 원동력은 어느 정권이 아니라 자식 새끼 조금이라도 잘 먹이고 잘 입히려던 우리네 부모들의 부성과 모성이었다. 대공황 시절의 미국 하층 농민들의 삶을 지탱했던 것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이 아니라 농민 조드의 가족처럼 어려움 가운데서도 남과 나누고 서로 보살피는 인간애였다.


제 자식만 챙기려는 배타적 모성은 매우 위험하다. 봉준호의 영화감독 작품 “마더”에서 엄마는 좀 모자란 아들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한다. 아들의 살인 장면을 본 고물상 주인을 타살하고 그 집을 불 질러 버린다. 그녀는 자기 아들 죄를 뒤집어쓰고 잡혀가는 지적 장애인에게, ‘너 부모님을 계시니? 엄마 없어?’라고 절규한다. 자기 자식에만 꽂힌 모성은 지독한 살상 무기가 될 수 있다. 미국 경제 대공황 시절에 로저샨 모녀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남루한 헛간에도 굶주린 낯선 사람을 먹이려는 모성이 여전히 있다고 믿는다. 


빠른 차들이 달리는 길은 살벌해 보인다. 도심에서 함부로 차를 몰아 다른 차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운전자를 찍은 블랙박스 영상이 매일 유튜브에 새로 올라온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는 접촉 사고 낸 딸 같은 상대를 우선 진정시키는 모습, 전복한 트럭에서 쏟아져 흩어진 맥주 박스들을 지나던 사람들이 달여와서 순식간에 치우는 뉴스 영상이 있다. 화재 현장에 달려가 사다리차로 사람들을 실어 내린 아버지와 아들, 굴삭기의 삽 바구니를 올려 불 난 아파트에 갇힌 모자를 구한 작업자, 폭우가 내린 곳곳에서 막힌 도로 배수구를 무릎 꿇고 뚫은 중년 남자들, 길에서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가 망설이지 않고 심폐소생술을 한 학생과 기사들…… 


길 위에도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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