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폴란은 직장에서 퇴출을 당하고, 경제적 필요 때문에 이전과 다른 삶, 즉 2막 인생을 시도해야 했다. 당시 마흔네 살이었던 폴란은 두 의사들로부터 폐암 진단을 받았다. 결국 암이 아니라 결핵에 걸렸음을 확인했지만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그가 부사장으로 일하던 월스트리트가 은행에서는 꽃을 보내왔다. 잘린 것이다. 고급 아파트 구입으로 인한 대출금과 네 자녀의 사립학교 등록금으로 경제적인 위험에 처했다. 건강 문제로 약 1년간은 일을 못할 지경이었다. 당시 그에게는 대학 졸업장도 없었다. 안 좋은 일들을 엎친 데 덥치 듯 짧은 기간 동안 한꺼번에 일어났다.
자신을 기업 회생 전문가로 소개한 이력서를 포츈 500대 기업에 탈락한 회사들에 뿌렸으나, 어느 회사에서도 응답을 받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모 대학에서 그에게 광고 강의를 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그는 한 번도 강의한 적이 없었다. 광고에 대해서도 몰랐으며, 10대들과 의사소통을 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는 돈이 필요했다. 아들 조언대로 광고 전문 서적을 정독하고 강의에 나섰다.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재선 준비를 하던 지미 카터의 선거 광고를 만들어 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이 것이 뉴욕 타임스의 한 광고 칼럼니스트에 의해 기사화되었고, 이 것을 안 지미 카터 대통령이 학생들을 초청했다. 이후 대학에서 그의 전문 분야인 신용에 대해 강의를 했다. 개인적으로 그에게서 대출받는 법에 대해 상담 받은 동료교수가 그 말한 것을 글로 옮겨서 인기잡지 ‘뉴욕’에 보냈다. 그 글이 기사화된 후, 폴란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대담했고 마침내 미국 주요 TV 방송사인 ABC에도 출연했다.
이후 그는 신용 문제에 대한 많은 상담 고객들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재능이 없는 그는 젊은 작가 마크 레빈과 함께 일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내었다. 폴란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중년의 결핵환자는 위기 상황에서 주저앉아 있지 않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마케팅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 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피하지 않았다. 그 일로 알려지자 그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재무 상담 강의와 라디오 및 TV 출연하는 등으로 고객 폭을 넓혔다. 둘째, 그는 그에게 없는 것, 즉 학력이나 글 쓰는 능력, 폭넓은 대인 관계, 은행 업무 이외의 다양한 사회 경험 등이 없는 것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는 것을 찾았고 또 새로운 일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의 재무 상담 서비스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파트너십을 나누었다. 그는 자의식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다. 재무 지식만을 따지고 보면 그보다 더 재무 상담전문가들이 있었겠지만, 폴란은 그들보다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 편에서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의 책이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린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극복한 뒤의 실패 경험 또한 귀한 자산이 된다. 그의 "2막" 인생을 정리한 책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자라면서 혹은 가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냥 보고 들음으로 배우는 것을 부수적 학습 (incident learning)이라고 한다. 우리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한 것은 이런 심리적 자산뿐 아니라 생업의 자산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국내 요리 프로그램에 자주 나온 김소희 씨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 TV 요리 프로그램에 단골 패널로 출연했다. 빈에서 식당을 운영할 때는 석 달마다 받는 예약이 금세 차 버릴 정도였다 한다. 그녀 자신이 밝힌 이력으로는 그녀의 원래 요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디자인 학교를 나와 의상 디자이너 활동을 7년간 했지만, 막상 그 생활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밥장사를 하면 어디서든 굶어 죽진 않는다”던 어머니 말을 의지하여 식당을 열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억척스레 일하면서 다양한 김치를 담궜던 홀어머니의 맛깔스러운 솜씨를 기억했다. 그것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었다. 파리에서 한복 패션쇼를 열어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던 한복 장인 김영희도 의상 디자인이나 패션 관련한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한복 만드는 솜씨나 우리나라 전통의 색감에 대해서는 자라면서 그녀 어머니의 옷 만드는 솜씨를 보며 자연스레 습득한 역량이다.
부수적 학습은 이른바 학습 전이(transfer of learning), 즉 배운 것을 생활에서 활용하는 정도에 있어서 어떤 학습 방법보다도 높다. 성장기에 집에서 보고 들은 것으로 자기 직업을 삼지 않더라도 그런 경험과 기억은 일생을 사는데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설사 직업적인 기술로 활용하지 않더라도 개인적 자질 특성 역시 우리 삶에 자양분으로 작용한다. 한 가족을 책임지는데 성실했던 아버지나 살림살이에서 알뜰했던 어머니의 모습, 식구들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했던 기억들은 우리의 역할 수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자신의 개인사적 기억을 고유한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 현재 겪는 여러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이 문제해결 능력의 습득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월세 집을 전전하며 끼니를 편의점 삼각 김밥 혹은 컵라면으로 때울 정도의 경제적 빈곤이나 사랑에 실패한 경험도 그대 마음속에 잘 저장하고 발효시키면 귀한 인적 자산이 된다.
우리에게는 나름의 고유한 개인사가 있고, 기초를 연마하고 전문성을 쌓던 기간이 있다. 머릿속과 근육 속에 지식과 기술들이 경험 속에 섞여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가끔은 기억 창고 속에서 지금도 쓸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뒤져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된다. 그대 속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보화가 숨어있다. 오늘은 바깥에서 기회 찾기보다 그대 속의 보물 찾기를 해보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