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문해력 걱정, 과연 어른들 문해력은 괜찮을까?

2006년의 독서왕은 어디로 갔을까?

by 기록습관쟁이

2006년, 대한민국은 읽는 자들의 나라였다.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는 읽기 영역 556점으로 당당히 세계 1위를 기록했다. 20년 전, 정보통신 현장에서 네트워크 케이블을 깔기 시작했던 내 눈에 비친 세상은 그야말로 지식의 고속도로가 막 뚫리기 시작한 황금기였다. 텍스트는 명료했고, 우린 행간에 숨은 의미를 찾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2025년의 풍경은 사뭇 기괴하다. 통계적 수치는 여전히 상위권인 듯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디지털 문해력의 붕괴라는 뼈아픈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텍스트 속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 내는 능력은 OECD 평균(47%)에 한참 못 미치는 25.6%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광속으로 흐르는 광케이블 속에서, 정작 그 길을 지나가는 생각의 알맹이들은 서로 충돌하고 부서지고 있는 셈이다.


이 위기는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응 방식은 너무 다르다. 이웃 나라 일본은 2018년 읽기 순위가 15위까지 추락하자 국가적으로 독서 대반격을 선언했다. 그 결과 2022년 평가에서 세계 2위로 수직 상승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 또한 교실에서 디지털 기기를 치우고 다시 종이책을 펼치는 아날로그 회귀를 선택하며 문해력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IT 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는 어떨까?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는 해프닝이 온라인을 달군다. 이건 단순한 어휘력 문제가 아니다. 문장 맥락을 짚어내고 타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독해 근육이 말라가고 있다는 신호다. 20년 동안 통신 현장에서 데이터의 흐름을 지켜본 나로서는, 하드웨어는 완벽한데 소프트웨어가 구동되지 않는 치명적 에러를 목격하는 기분이다.


뇌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진화가 아닌 산만함으로의 퇴화라고 규정한다. 니콜라스 카는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우리 뇌가 얕은 정보 처리만 반복하는 스크린 브레인으로 변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인터넷 서핑을 할 때 우리 뇌는 텍스트를 정독하지 않고 F자 형태로 훑어내린다. 깊이 사고하는 회로는 녹슬고, 즉각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회로만 비대해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을 꾸짖는 우리 어른들이다. 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문해력은 20대에 정점을 찍은 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추락한다. 30대 후반부터는 OECD 평균 이하로 떨어지며, 50대 이후에는 글자는 읽지만 뜻은 모르는 기능적 문맹이 급격히 늘어난다.


사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퇴근 후 부산의 고요한 저녁, 모모스 커피의 프루티 봉봉 한 잔을 앞에 두고도 손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이 들려있을 때가 많다. 곧 태어날 딸아이가 마주할 세상은 지금보다 더 자극적일 것이다. 27주 차 검진에서 아이 심장 혈관이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이가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은 최신형 태블릿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의 맥락을 스스로 읽어낼 줄 아는 단단한 문해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는 명확하다. 그건 바로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연습이다.


아이들에게는 디지털 디톡스와 슬로우 리딩이 필요하다. 하루 30분만이라도 화면을 끄고 종이 질감을 느끼며 문장 끝에 머물 줄 아는 인내를 가르쳐야 한다. 어른들에게는 함께 읽는 뒷모습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긴 호흡의 글을 끝까지 읽어내는 끈기를 보여줘야 한다. 문해력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가 아니다.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나만의 논리를 세우고, 가짜와 진짜를 구별해 내는 인간 존엄의 기술이다. 아빠의 서재가 아이에게 가장 큰 놀이터가 되고, 책장이 넘겨지는 소리가 우리 가족의 가장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되기를 바라본다.


대한민국 문해력의 르네상스는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오늘 우리 집 식탁 위에 놓인 책 한 권으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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