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같은 피지컬 뒤에 숨겨진 '강강약약'

첫인상은 범죄도시였다

by 기록습관쟁이

우리 현장에는 전설 같은 인물이 하나 있다. 협력업체 소속의 송 부장.

그를 처음 본 날,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영화 범죄도시의 마석도가 실사판으로 걸어 나오는 줄 알았으니까.


터질 듯한 형광색 안전조끼.

그 너머로 비집고 나오는 팔뚝은 웬만한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 했다.

거기에 짙은 눈썹과 꾹 다문 입술까지.

그가 무거운 장비를 한 손에 들고 성큼성큼 걸어오면, 주변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말이 없었다.

현장에서 업무 지시를 내릴 때도 단답형이었다.

"이거, 저리로."

"예, 알겠습니다."

필요 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 남자.

나는 그가 무서웠다. 좁은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그와 단둘이 있게 되면, 괜히 바쁜 척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저 큰 주먹에 바람이라도 일면 어쩌나 싶어서.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오후, 현장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컨테이너 밖에서 들려온 것은 거대한 폭발음이 아니었다.

그건 송 부장의 목소리였다.


"이보세요! 현장에 한 번이라도 와봤어? 당신들이 책상에 앉아서 그린 도면대로 하면, 우리 애들 손목 나간다고!"


전화기 너머의 발주처 담당자를 향해 쏟아내는 일갈.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스피커폰도 아닌데 옆에 있는 나까지 상대방의 떨리는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송 부장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목 옆 굵은 핏줄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솟구쳤다.

압도적인 포스였다. 그가 전화를 끊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주변 인부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흩어졌다.


그때였다.

현장 구석에서 케이블을 정리하던 신입 사원 김대리가 실수로 공구를 떨어뜨렸다.

챙그랑! 적막한 현장에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김 대리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방금 그 사자후를 들었으니, 이제 자기가 타깃이 될 거라 확신했겠지.


그런데 송 부장의 반응은 이상했다.

그는 거친 숨을 한 번 크게 내뱉더니, 이내 얼굴 근육을 부드럽게 풀었다.

그리고는 김 대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툭, 어깨를 쳤다.


"어이, 김 대리. 놀랐냐? 미안해~ 내 목소리가 좀 컸지?"


나긋나긋하다 못해 달콤하기까지 한 목소리.

송 부장은 바닥에 떨어진 공구를 직접 주워주며 덧붙였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기계도 아닌데 어떻게 실수를 안 하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안 다쳤으면 됐어. 이따 커피나 한잔 마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방금 그 호랑이는 어딜 가고, 왜 저기 푸근한 동네 형님이 서 있는 걸까.


오늘 점심,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식사를 제안했다.

메뉴는 뽀얀 국물이 일품인 돼지국밥.

그는 국밥이 나오기도 전에 깍두기를 시원하게 씹으며 웃었다.


"부장님, 어제 사실 좀 놀랐습니다. 발주처 담당자한테 그렇게 화내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진짜 무섭던데요."


그는 부추를 국밥에 듬뿍 넣으며 껄껄 웃었다.


"아, 그거요? 말로 해서는 안 듣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현장 사람들 안전이 달린 문젠데, 거기서 밀리면 안 되죠. 그래서 좀 지른 겁니다."


"평소엔 정말 온화하시잖아요. 후임들한테도 그렇고, 아까 보니까 사무실에선 악마라고 불린다는 소문도 있던데요?"


내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그가 숟가락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맞아요. 저 악마 소리 듣습니다. 근데 그건 위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소리예요. 나는 후임들한테는 절대 머라 안 합니다. 아니,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도 가끔 답답할 때가 있지 않으세요?"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후임들 머라 해봤자 주눅만 들어요. 사람이 주눅 들면 창의성도 죽고, 일 효율도 안 나옵니다. 뭣보다 마음이 아프잖아요. 실수? 그거 선임이 커버하라고 월급 더 받는 거 아닙니까? 내 역할은 위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압력을 몸으로 막아내고, 우리 애들이 마음 편히 일하게 판 깔아주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선임들하고만 싸웁니다. 하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뚝배기 속 국물보다 뜨겁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 남자는 진짜였다.

겉모습만 마동석이 아니라, 내면까지도 거대한 산 같은 사람이었다.

강한 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약한 자에겐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진국이구나 싶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강약약강'의 법칙을 충실히 따른다.

나보다 잘난 사람에겐 굽신거리고, 나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에겐 목에 힘을 준다.

처절한 생존 본능일 테다. 나 역시 그런 세태를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 또한 누군가에겐 삶을 버티는 방법일 테니까.


하지만 송 부장 같은 사람을 만나면,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삭막한 현장, 쇳가루 날리는 먼지 속에서도 사람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거.

자신의 힘을 누군가를 누르는 데 쓰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보호하는 지붕으로 쓰는 사람.


그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부산 바닷바람이 오늘따라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게 된다.

내 마음속에도 작은 욕심 하나가 피어올랐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내 후배들이 나를 떠올릴 때, '그 사람 참 진국이었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송 부장의 넓은 어깨를 보며 다짐해 본다.

나도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볕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그를 알게 되어 참 다행인 날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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