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꿈꾸다
바다 냄새가 짙게 배인 자갈치 시장 골목을 걸을 때면, 나는 가끔 착각에 빠진다. 익숙한 부산의 풍경 속에서 들려오는 건 더 이상 한국어만이 아니다. 상인들의 목소리 사이로 베트남어가 섞여 흐르고, 구석진 식당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전통 빵 굽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해운대의 파도 위로는 서핑보드를 탄 외국인들의 환호성이 넘실댄다. 부산은 이제 더 이상 어제의 부산이 아니다.
어릴 때만 해도 부산은 그냥 '우리 동네'였다. 아침이면 할머니들이 새벽시장을 보러 가고, 저녁이면 포장마차에 모여 낯익은 얼굴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곳. 그러나 지금, 이 도시는 너무도 다채롭고 낯설다. 길을 걸으면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변화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내 기억 속 부산의 모습을 조금씩 덮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변화를 반기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특히 오래된 골목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낯선 언어와 문화는 익숙한 일상을 흔들어 놓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멈춰서 귀 기울이면, 이 변화 속에서도 따뜻한 순간들이 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서툰 한국어로 또래 친구들과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시장 한구석에서 이주민과 상인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람답게 살아간다.
부산은 바다를 품은 도시다. 언제나 밀려오는 파도를 받아들이면서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곳.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도 어쩌면, 변화를 받아들이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 그리고 때때로 불거지는 갈등까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주민을 위한 통번역 봉사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어떤 이는 자신이 다니던 동네 국밥집에서 이주민 직원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이런 순간들이 모여 결국 도시를 새롭게 만든다.
부산은 내게 묻는다. "너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텐가?" 나는 아직 완벽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새로운 부산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을 열고 한 걸음 더 다가가 보려 한다. 언젠가 이 도시는, 그리고 나 역시, 이 변화 속에서 더 깊고 넓어진 모습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으며, 나는 오늘도 변해가는 부산의 거리 한복판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