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걸 가져도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우리는 언제 행복해질까? 더 좋은 차를 타면? 더 좋은 집에 살면? 그런데 왜 만족은 항상 한 걸음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차를 바꿀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평가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걸.
내가 처음 몰았던 차는 중고 SUV 차량이었다. 아버지가 모시던 차량을 인수받아 타게 되었다. 요즘은 수동기어 차량이 없지만 이때만 해도 차량 전체의 30% 정도는 수동이었던 것 같다. 수동 모델이 연비도 좋고 유지하기에 부담이 적었으니까.
그러다가 첫차로 모닝을 샀다. 경차임에도 불구하고 선루프 뺀 모든 옵션을 넣었다. 좋았다. 경차 혜택이 많아서 유지비가 작게 들어갔고, 주차할 때도 작은 차량의 이점이 많았다. 특히 50% 주차할인과 경차 전용 주차 공간은 크으.. 대부분 와이프가 타고 다녔다. 다음 차는 기아자동차 K5였다. 확실한 건 경차를 타다가 중형 승용차로 넘어오니 신세계가 느껴졌다. 외관부터 내부 크기, 승차감, 옵션 등 모든 것이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주차해 둔 차를 접촉사고를 내고 달아난 뺑소니를 당했다. 차량을 수리하는 기간 동안 운이 좋게 BMW 5시리즈를 타고 다녔다. 차가 참 경쾌하더라. 운전이 즐거웠다. 제주도 여행 때는 렌터카로 아우디 A5 카브리올레(오픈카)를 타고 다녔다. 밸런스가 참 좋다고 느꼈고 오픈카인 만큼 개방감은.. 크. 끝내줬다. 사업하는 친구가 새로 뽑은 벤츠 E 클래스의 운전석에 앉았을 땐 내가 부자처럼 느껴졌다. 차량의 고급감에 나도 급이 높아졌달까.
2년 동안 경기도에 지내면서 람보르기니 우루스를 탄 적이 있다. 사업가였던 한 지인이 새로 뽑은 차였는데 운전대를 잡은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재벌들이 슈퍼카를 타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대적 평가는 비단 차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바꿀 때도 비슷하다. 처음 2G 폰을 쓰던 시절에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 우리는 더 이상 버튼식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인터넷이 없으면 불편하고, 카메라 화질이 조금만 떨어져도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처음 스마트폰을 접했을 때는 단순한 터치 기능만으로도 감탄하지 않았던가?
음식도 그렇다. 처음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었을 때, 입안에서 퍼지는 풍미에 감탄했다. 그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더 비싼 스테이크를 찾아다니게 된다. 예전에는 2만 원짜리 스테이크도 만족스러웠는데, 이제는 10만 원짜리를 먹어야 겨우 감탄을 하게 된다. 미식의 기준은 높아지지만, 그만큼 감동도 줄어든다. 결국 우리 입맛조차도 상대적 평가의 연속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발견된다. 처음 취업했을 때는 월급을 받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을 보며 비교하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왜 나는 이 정도밖에 못 버는 걸까?'라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따지고 보면, 내 삶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기준이 변한 것이다.
어느 날, 후배가 내 차를 보며 부러워했다. "형, K5 진짜 좋네요. 저도 언젠가 꼭 사고 싶어요." 나는 후배의 차를 봤다. 10년 넘은 아반떼. 순간,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모닝을 타면서도 행복했던 그 시절. 후배에게 웃으며 말했다. "야, 너도 나중에 차 바꾸면 나랑 똑같이 느낄 거야."
비단 차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내리는 모든 평가는 상대적이다. 지금 누리는 것들이 당연해질 때, 가치를 잊어버리곤 한다. 더 나은 것을 경험한 후에는, 이전의 만족을 되돌아보기 어렵다. 가끔은 기억해야 한다. 처음 내 손에 들어왔을 때의 그 설렘, 그 만족을.
지금 타는 차는 언젠가 낡아질 테고, 언젠가는 또 더 좋은 차를 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차가 내 인생을 얼마나 바꿀까? 결국 중요한 건, 차가 아니라 그 차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아닐까?
어쩌면 진짜 행복은 타고 있는 차가 아니라, 그 차를 타고 어디로 가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비교하고 평가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경험하는 순간들이다. 첫 차를 타고 친구들과 밤새 달리던 여름밤의 도로, 연인을 태우고 처음으로 떠났던 설레는 여행, 지친 하루 끝에 혼자 음악을 들으며 달리던 조용한 퇴근길. 그런 순간들이 쌓여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더 좋은 것을 찾으며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결국엔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디로 향하느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