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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 <마녀와의 7일>

by 기록습관쟁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100번째 작품 <마녀와의 7일>은 단순한 추리 소설의 틀을 넘어, AI 시대의 윤리적 딜레마와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설은 AI 감시 체제가 발달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리쿠마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라플라스의 마녀' 마도카의 도움을 받는다. 리쿠마는 마도카와 함께 사건을 추적하면서 AI 기술의 위험성과 그에 대비되는 인간 고유의 능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리쿠마의 아버지 쓰키자와 가쓰시는 경시청 형사부 수사공조과에 근무하며 '미아타리 수사원'이라는 특수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거리에서 행인들의 얼굴을 주시하며 지명수배자를 찾아내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장인의 기술과도 같은 그의 능력은 AI 기술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미래 사회는 곳곳에 방범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영상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경찰의 감시 시스템에 전송된다. 얼굴 인식, 보행 인식, 3D 인증 시스템 등 AI 기술은 개개인을 순식간에 식별해 낸다. 지명수배자가 숨을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미아타리 수사원의 존재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쓰시의 노트를 보면 4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빼곡하게 메모되어 있다. 그는 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생각까지 상상해 낸다. 단순히 얼굴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것이다.


가쓰시는 사진 속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상상하며 그들의 인생을 엿본다. 그는 그들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상상하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진 속 얼굴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읽어낸다.


이러한 가쓰시의 모습은 마치 꼬치구이 가게 주인 다케오의 프로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손님들에게 돈을 받는데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그냥 맛있는 걸 대접하고 싶었지. 그것뿐이야"와 같은 그의 담담한 말속에는 장인의 책임감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닭고기 거래에 있어서도 "서로 간에 너무 편하면 아무래도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야. 결국 싸다고 질 낮은 닭고기를 사고팔고 하게 되겠지"라며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처럼 이 소설은 인간의 따뜻함과 프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긴자의 바 '블루스타'와 카지노 도박장은 낯선 사람들이 모여 허식과 허언을 구사하며 자신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고 상대의 본성을 탐색하려 드는 곳으로 묘사된다. 마도카와 다케오는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해봤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어린 리쿠마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마녀와의 7일>은 AI와 인간의 공존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소설은 이러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또한, 이 작품은 기술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AI 기술은 분명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소설은 이러한 기술의 그림자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마녀와의 7일>을 읽으면서 AI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우리는 AI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가치는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소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했다.


마녀와의 7일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우리 사회와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AI 시대의 윤리적 딜레마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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