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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기록하지 않을까?

기록을 세우는 것 vs 기록을 남기는 것

by 기록습관쟁이

우리는 기록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기록이 없다면 역사는 사라지고, 경험은 휘발되며, 깨달음은 단순한 순간의 감정으로 그칠 것이다. 기록을 "세운다는 것"은 운동 경기에서 눈에 보이는 성적을 수치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최상의 성과를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려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일상 속에서 <기록>이라는 단어를 손쉽게 접하며,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를 기록하는 일에 열광한다.


하지만 기록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남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후일을 위해, 또는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록을 한다. 이때의 기록은 성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결과가 아니라 흔적이다. 그렇기에 기록을 세우는 사람은 많아도, 기록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드물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신기록을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리듯, 기록을 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기록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단순히 종이에 펜을 가져다 대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고, 정직하게 자신을 담아내는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록을 미루곤 한다. 하루를 돌아보며 기록하려 하면, 무엇을 남겨야 할지 막막해질 때도 많다. 어떤 날은 기록할 만한 일이 없어 보이고, 또 어떤 날은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이 뒤섞여 정리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이틀을 넘기다 보면 기록은 점점 멀어지고, 결국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록을 소비하는데 익숙하다. 책을 읽고, 스포츠 경기를 보며, SNS에 올린 누군가의 글을 탐독한다. 그들의 기록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 기록을 남기는 일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왜일까? 기록이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과 감정, 생각이 담긴 결과물이다. 그만큼 기록에는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그리고 우리는 때때로 그 과정이 두렵다. 과거의 실수와 후회, 이루지 못한 목표, 불완전한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록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록은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작은 기록이 쌓이면 패턴이 보이고, 성장의 증거가 되며,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글이든, 사진이든, 오디오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록하는 습관 자체다.


기록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더해진다. 오늘은 대수롭지 않게 적어둔 한 줄의 메모가 몇 년 후의 나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그저 펜을 들어 한 줄이라도 남겨보자. 기록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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