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뎌내기 위한 용기
"오늘은 몇 명이나 들어올까..?"
"혹시 또 노쇼가 나올까?"
"오늘 매출로 전기세는 낼 수 있을까?"
오전 10시. 커피 머신을 예열하며 선우 씨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의 하루는 '확실한 것'보다는 '변수'로 가득하다.
직장인들은 적어도 월급날이 정해져 있지만,
그에겐 내일도 가게 문을 열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
영훈 씨는 2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차렸다.
평범한 사무직. 늘 회의에 시달리고, 야근에 절어 있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 사람들을 맞이하는 삶'
그는 그것을 자유라고 불렀다.
하지만 자영업의 현실은 달랐다.
자유는 있었지만, 평안은 없었다.
휴일은 자기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지만, 매출이 곤두박질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는 어느새 손님의 발자국 소리에, 날씨에, 인근 공사 일정에까지 민감해졌다.
하루에 3만 원을 벌 때도 있었고, 갑자기 단체 손님이 들어와 50만 원을 벌 때도 있었다.
'왜 이렇게 둘쑥날쑥하지?'
그는 매일 아침 셔터를 올리며 '운'을 기대한다.
"오늘은 좀 잘 됐으면..."
자영업자는 매일 도박판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판에서 '버티는 사람'만이 다음 기회를 갖는다.
수익은 줄어도 임대료는 그대로 나가고,
배달 앱 수수료는 올라가도 음식값은 함부로 못 올린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던 정은희 사장님은
코로나 시기에 하루 매출 2만 원도 안 되는 날이 두 달 넘게 이어졌다.
'이러다 진짜 문 닫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방식을 바꿨다.
인스타그램에 하루 한 장씩 떡볶이 사진을 올리고,
이웃 상권과 협업해서 소소한 이벤트를 열었다.
옆 꽃집에서 5천 원 이상 사면 떡볶이 천 원 할인.
그녀의 가게는 다시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몇 달 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엔 살아남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는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분식집이 되고 싶어요."
이야기의 핵심은 이것이다.
'기적 같은 성공'은 아니었지만,
변수에 대응하는 그녀의 선택이 하루를 살렸다.
그 하루들이 쌓여 지금의 가게가 됐다.
모든 자영업자에게는 자기만의 싸움이 있다.
겉으로는 밝게 웃고 손님을 맞지만,
속으로는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를 묻는다.
자영업이 어려운 이유는, 실패가 남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 잘못도 아니고, 시스템 문제도 아니다.
손님이 안 오는 건 결국 나 때문인 것 같고,
리뷰 하나에 밤잠을 설친다.
하지만 계속 시도한다.
메뉴를 바꾸고, 인테리어를 바꾸고, 손님에게 말을 거는 방식까지 바꾼다.
때로는 '조용히 접자'는 마음으로도 하루를 시작하지만,
막상 셔터를 올리는 순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해요."
이건 단순한 상업 활동이 아니다.
하루를 견뎌내기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자가 '경우의 수'를 줄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바로,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어, 손님이 없어도 매일 가게 청소는 한다.
비가 오든 말든, SNS에 오늘의 메뉴 사진은 올린다.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포스기에 적힌 매출표를 꼼꼼히 정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셔터를 올린다.
이 작은 반복들이 쌓여 신뢰가 되고, 브랜드가 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혹시 자영업자는 매일 스스로를 다시 창업하는 사람이 아닐까?
어제의 매출은 잊고, 오늘의 가치를 새로 설계하는 사람.
그 용기 덕분에, 동네 골목에 따뜻한 불빛이 켜지고,
지친 사람들의 하루에 작은 쉼표가 생긴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폐업하는 가게는 성공하는 가게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더더욱, 이 싸움은 존중받아야 한다.
결국 자영업이란,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그 하루를 발판 삼아 또 내일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오늘도 다시 경우의 수를 줄인다.
10개 중 3개가 실패해도, 나머지 7개를 지키기 위해.
언제 닥칠지 모를 태풍 앞에서도
작은 가게 문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는다.
그리고 그 하루의 끝에 조용히 말한다.
"오늘도 망하지 않았다"
그 말은, 내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또 하나의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