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경우의 수 05화

4화. 학생

공부는 시험에서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by 기록습관쟁이

'오늘 시험에선 또 어떤 문제가 나올까?'


시험지를 받기 전, 누구나 한 번쯤 속으로 묻는다. 민우가 외운 공식일까, 아니면 어제 넘기다 만 페이지에서..? 열심히 풀어본 기출 유형일까, 아니면 딱 한 번 나왔던 요상한 문제일까? 이쯤 되면 시험이란 건 제비 뽑기다. 단순한 노력의 결과라기보단, 약간의 운과 타이밍이 얹힌 게임. 그래서 우린 '운도 실력'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공부를 오래 해본 사람들은 안다. 실력이 쌓인 학생은, 운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사실을. 복불복을 최소화하는 훈련, 그게 바로 공부의 본질이라는 걸.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날이었다. 반 친구들 대부분은 독서실로, 학원으로, 새벽 기상 인증을 다짐하며 각자의 루틴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민우는 아직도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조차 모르던 상태였다. 국어는 감으로 푼다는 착각, 수학은 포기라는 선택, 영어는 무슨 자신감인지 무대포로 밀고 나갔다. 그래도 성적이 망가진 적은 없었기에, 그는 '어느 정도는 잘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9월 모의고사에서 뼈저리게 깨졌다. 독서 지문 두 개를 날려버리고, 확률과 통계에서 멘붕이 왔고, 영어는 1등급에서 3등급으로 미끄러졌다. 그때 처음 느꼈다.

'그동안 실력을 쌓은 게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구나'


모든 문제를 맞힐 순 없다. 중요한 건,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는 반드시 맞히고 나오는 거다. 시험은 결국 그 싸움이다. 준비된 학생은 답안지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모르는 문제를 마주해도, '그럴 수 있지'하고 넘길 줄 안다. 풀 수 있는 문제의 경우의 수를 미리 줄여두었기 때문이다. 기출 유형을 정리하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하루 공부 루틴을 자신만의 호흡으로 맞춰가며, '나는 내가 공부한 만큼은 반드시 해낼 거야'라는 감각을 스스로에게 주입한다. 이건 단순한 반복 훈련이 아니다. 자기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용한 자기 확신의 시간이다.


공부는 예측을 줄이는 작업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내일의 시험지'가 어떤 형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풀고, 더 자주 틀려보는 거다. 결국, '틀릴 문제'를 줄이는 거다. 서울대에 합격한 한 선배가 말했다. "나는 수능 당일 시험지를 받고, 긴장이 하나도 안 됐어. 왜냐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는 내가 이미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봤던 유형이었거든." 물론 그게 정말 똑같은 문제가 나왔다는 뜻은 아니었을 거다. 매일 쌓아온 연습과 준비 덕분에, 처음 보는 문제도 '익숙한 문제'처럼 느껴졌다는 말일 것이다. 이게 바로 진짜 실력이다.


시험장 안에서 진짜 싸움은, '모르는 문제를 어떻게 맞힐까'가 아니라 '아는 문제를 어떻게 실수 없이 풀어낼까'에 있다. 선택형 시험의 구조 자체가 그러하다. 100점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수를 줄여 90점을 얻기 위한 시험. 그것이 우리 현실이고, 우리가 줄여야 할 경우의 수의 정체다.


어느 날, 진수가 공부를 하다 말고 투덜거렸다.

"왜 맨날 안 외운 게 나오는 거냐!"

민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네가 안 외운 게 아직 너무 많아서 그래"

그 말에 진수는 잠시 정적을 타더니, 이내 다시 문제집을 폈다. 민우 역시 그랬다. 당장의 시험 하나 때문에 무너지기엔, 쌓아온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길, 민우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늘 풀 수 있는 문제는 제대로 풀고 나왔나?"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성적은 두 번째 문제다. 오늘 못 본 점수보다 더 중요한 건, 다음 시험에서 풀 수 있는 문제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그 믿음을 위해 공부하는 거다. 실수를 줄이고, 복불복의 영역을 좁히고, 결국에는 시험이 '두려움'이 아닌 '확신'의 무대가 되도록.


그날 밤, 민우는 책상 앞에 앉아 다시 펜을 들었다. 이미 시험은 끝났고,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오답 노트를 펼쳤다. 문제 옆에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라고 메모했다. 틀린 문제를 다시 복기해보고, 왜 그때 그렇게 생각했는지 적었다. 정답보다 중요한 건, 틀린 이유를 아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에, 민우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같은 문제를 누군가는 맞히고, 누군가는 틀린다. 어쩌면 그 차이는 지능보다, 반복과 기록의 힘일지 모른다. 책상 위엔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필통이 있다. 중학교 때 처음 산 모눈 노트 한 권은, 지금도 그의 책상 아래에 남아 있다. 그 안엔 실패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흔적들이야말로 가장 값진 준비물이었다.


민우는 요즘, '잘 푼 문제'보다 '잘 틀린 문제'를 소중하게 여긴다. 한 번 틀린 문제는 다시 틀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게 해서 결국, '확실하게 맞힐 수 있는 문제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게 실력이다. 100점을 바라보는 공부가 아니라, 80점은 반드시 지켜내는 공부. 그 싸움이 진짜인 거다.


가끔은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다. 친구가 더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 열심히 했는데 예상보다 낮은 등급이 나왔을 때, 속상한 마음에 하루를 통째로 날리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민우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오늘 진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믿고 싶어."

그 믿음 하나로,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지금 당장의 점수는 아니더라도, 내가 쌓아가는 시간들이 언젠가 나를 구할 거라는 믿음. 공부란, 그 믿음 하나로 이어가는 일이다.


시험을 앞둔 수많은 학생들, 혹은 자격증 공부를 하는 직장인들,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보다 조금 더 준비해야만 하는 모든 사람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틀리지 않기 위해, 오늘 무엇을 했나요?"

이 질문은 단지 공부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시험지 앞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지를 정리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길을 하나씩 지워가며 살아간다. 경우의 수를 줄인다는 건, 결국 '혼란 속의 나'를 줄여가는 일이다. 어쩌면 그게 어른이 된다는 걸지도 모른다.


이제 민우는 안다. 공부는 정답을 맞히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자신을 믿기 위한 근거를 하나씩 쌓아가는 작업이라는 걸. 그리고 내일, 그는 또다시 복잡한 문제보다 명확한 자기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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