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거, 지금도 생각나!
대학 시절, 교환학생 신청서를 손에 쥔 적이 있다. 설명회까지 듣고 왔으니 절반은 마음먹은 셈이었다. 그 종이를 집에 가져온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밥은 입에 맞을까? 돈은... 부모님이 내주실까?'
그리고 며칠 후, 그 종이는 책상 한구석에 방치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세상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한 기회를, '나랑은 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보내줬다.
기회란 게 그렇다. 늘 나를 쳐다보며 손을 흔들다가도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휙 가버린다. 그리곤 꼭 나중에, 아주 멀리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너 아니어도 괜찮았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회사 다닐 때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이직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마음은 딱 이랬다.
"여기서도 나름 괜찮은데 굳이 옮길 필요 있을까?"
나는 다시 익숙함을 선택했고, 1년 뒤 그 회사는 동종업계 전국구 회사가 되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몸 담았으면 주식 좀 나눠줬을까?'
놓친 기회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 순간엔 정말 중요한 일처럼 보이지 않다가, 한참 지나서야 "아, 그게 기회였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뒤끝 있는 존재는 사실 '기회' 아닐까.
웃긴 건, 그 놓친 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를 보자. 다들 '애플 창업자'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한때 아타리에서 일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 배낭여행을 갔다. 다들 "커리어를 버린 거냐?"고 말했지만, 여행에서 배운 '단순함'이 훗날 아이폰 디자인에 깃들었다.
카카오 김범수 의장도 삼성 SDS라는 금칠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창업했다가 여러 번 말아먹었다. 그런데 그 말아먹은 경험들 덕분에 카카오가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실패한 창업가가 아니라, 기회를 잘 못 알아본 투자자들을 기억하게 됐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J.K 롤링 역시 해리포터 원고가 수십 군데에서 퇴짜 맞았을 때, 아마도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이제 도서관에 기증해야 하나...'
하지만 결국 한 출판사가 그녀의 원고를 받아줬고, 이젠 마법 세계의 여왕이 됐다.
놓친 기회, 거절당한 제안, 망설이다 흘려보낸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은 아쉽지만, 꼭 실패는 아니다.
오히려 내가 더 오래 머무르게 된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로운 것들이 피어나기도 하니까.
이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기회는 전철처럼 다시 온다. 물론 노선은 좀 다를 수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덜 망설이고 싶다.
너무 신중한 건 때때로 기회를 무심코 흘려보내는 가장 교묘한 방식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없이 손 흔드는 그 기회를 보며 생각한다.
"이번엔, 그냥 한번 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