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견뎌낸 10년
태국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귀국했다.
그가 제일 먼저 하고 싶다던 건? 프로야구 직관!(롯데 팬이다)
1루 내야 상단에 자리를 잡고, 목청껏 응원했다.
경기 끝나고는 당연히 술이다. 야구엔 치맥, 인생엔 술이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니 할 말이 쏟아진다.
야무지게 월천을 찍었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부산 초량에 조그만 오피스텔 하나 임대해서 잘 먹고 잘 산다는 자랑까지.
솔직히 부러웠다.
"와... 싱글에, 돈도 잘 벌고, 자유롭고... 이 자식 잘 살았네?"
... 근데, 반전은 언제나 술잔 밑에서 올라온다.
"하루 세 시간 자면서 일해.
고객 클레임 날까 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근데 고객들 웃는 얼굴 보면, 또 참게 되더라."
뭐야 이거, 갑자기 다큐냐?
친구는 일본에선 통역, 호주에선 농장 사업(형이랑 동업이지만),
한국에선 카지노 딜러라는 커리어를 쌓았다.
지금은 태국에서 가이드로 1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월천 찍는 것도 그냥 되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멀티 포지션 인생 풀세트다.
외모? 준수하다.
키도 크다. (188cm)
말도 잘한다.
사람 잘 웃긴다.
아, 이건 좀 얄밉다.
그래서 나는 녀석이 가이드가 천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가이드가 프리랜서거든.
고객 없으면 적자야.
저가 상품 패키지?
쇼핑몰에서 뭘 얼마나 팔리느냐에 따라 수입이 결정돼.
고객이 쇼핑이라도 안 하면... 그날은 헛수고야."
세상에, 우리가 싸게 다녀오는 그 뒷면에는
가이드의 위장과 멘탈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집안 막내.
형은 호주 정착, 누나는 강원도 시집.
어머니는 혼자 계신다.
그런데도 먼 타국에서 일하며 어머니 걱정까지 한다.
정리하자면,
이 친구는 월천 벌고, 싱글이고, 외모까지 갖췄으며,
효심까지 깊고, 일도 잘하고, 웃기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짜증 날 정도로 완벽한 사람.
근데 본인은 맨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그렇다.
나는?
그에 비하면 평화롭다.
출퇴근 정확하고, 스트레스도 그럭저럭.
물론 부업으로 시간 쪼개가며 글도 쓰곤 있지만,
그 녀석에 비하면... 그냥 새발의 피다.
아니, 새의 땀방울 수준.
그래도 고맙다.
그날 술자리가 내겐 동기부여였다.
그에게도, 내가 친구로서 작은 숨구멍이 되어줬기를.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한다.
맞다.
잠 못 자고도 웃는 사람, 밥 못 먹고도 배부르다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미 자기 분야에서 최고다.
우리 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고생하는 보헤미안 친구야.
다음 귀국 땐 네가 술 사라.
월천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