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던가. 우리는 본디 '쌓아 올리는' 존재라고.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씹어 삼키기 전부터,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쌓고 또 쌓아 올리며 만족감을 느꼈을 게다. 돌멩이 몇 개 포개어 놓고 흡족해하던 원시인의 마음이, 서울 하늘을 찌르는 롯데월드타워를 세운 현대인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리다. 555미터, 123층. 그 육중한 숫자들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가히 압도적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저 멀리 병풍처럼 서 있는 롯데월드타워는 이제 서울의 얼굴마담이 되었다. 뭐, 우리만 이런 건 아니다. 저 멀리 두바이에서도, 뉴욕에서도, 도대체 누가 누가 더 높이 쌓나 '탑 쌓기' 놀이라도 하는 양, 경쟁하듯 거대한 '혹'들을 지구 위에 심어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우습다. 둥글디 둥근 이 지구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지배자'라 칭하며 으스대면서도, 고작 발 딛고 선 땅에 끊임없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욱여넣는다. 지구는 그저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우직한 어머니처럼 말이 없다. 우리는 그 위에 '내 집', '우리 건물'이라 이름 붙이며 어깨를 으쓱거리지만, 이 거대한 '혹'들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구는 괜찮을까? 그리고 이 혹들 덕분에 우리가 정말 행복해졌을까? 밤늦게 퇴근해 불 꺼진 아파트 숲을 올려다볼 때마다, 왠지 모를 헛헛함과 함께 이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당장 내가 사는 부산만 해도 그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는 텅 비어 있던 자리에 귀신같이 새로운 아파트들이 솟아나 있다. 마치 하룻밤 새 마법이라도 부린 듯, 이 콘크리트 괴물들은 쉴 새 없이 영토를 확장한다. 옛 골목길의 정취가 남아있던 주택가들은 점점 빛을 잃고, 마치 '왕따'당하는 아이처럼 쓸쓸하게 변해간다. 그곳에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은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억지로 짐을 싸야 한다. 갈 곳 없는 그들은 결국, 또 다른 낡은 동네의 작은 방 한 칸으로 밀려들어간다. 이 모든 풍경이, 더 많은 '혹'을 붙이려는 인간의 지독한 욕망이 빚어낸 그림이다. 어쩌면 '국가'라는 거대한 손이 뒤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 혹은 '지금 아니면 못 사!' 같은 달콤한 속삭임으로 이 욕망의 수레바퀴를 힘껏 밀어주는 건 아닐까, 씁쓸한 상상을 해본다.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인 줄 아는가? 자그마치 46억 살이다.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득도한 노인 같은 나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지구는 수많은 지각 변동과 빙하기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백 년 남짓 살면서, 지구를 아주 들었다 놨다 한다. 인류의 역사가 기껏 7천 년이라지만, 우리가 본격적으로 '혹'을 심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는 고작 200년 남짓이다. 단 200년 만에, 우리는 46억 살 먹은 지구에게 '혹 붙이기 달인' 칭호를 받아 마땅할 만큼 엄청난 흔적을 남긴 것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흡사 '진상 손님'같은 존재 아닐까. 아니, 어쩌면 악성 기생충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구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으면서, 지구를 아끼고 보듬기는커녕 여기저기 해코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숙주의 영양분을 빨아먹으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해를 끼치는 기생충처럼. 지구에게 우리는 그저 '민폐 갑' 존재인 셈이다.
인간이 흙을 밟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18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지구촌은 말 그대로 콘크리트 뷔페로 변모했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라. 당신의 주변은 어떤 모습인가. 아마 산과 바다, 그 자연의 풍경보다 온통 콘크리트 덩어리가 더 많이 보일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어디를 가든 콘크리트 건물 안에 갇혀 있다. 콘크리트 없이 살아가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직접 지구에 붙인 이 거대한 '혹'들이 없으면, 이제는 숨조차 쉬기 힘든 지경이 된 것은 아닐까.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건강을 찾고 자연을 찾는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흐르는 산과 계곡을 찾아 헤맨다. 힐링이니 자연 친화적 삶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게다. 어쩌면 이건, 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다시 지구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본능의 발현은 아닐까? DNA 깊이 새겨진 귀소 본능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좀 뻔뻔하다는 생각도 든다. 실컷 짓밟고, 파헤치고, 혹사시킨 지구에게 이제 와서 다시 안기고 싶다니. 옛날이야기 속 혹부리 영감처럼, 과유불급은 결국 큰 화를 부르는 법이다. 이미 기후 변화라는 심상찮은 역풍이 전 지구적으로 불어오고 있지 않은가.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전례 없는 가뭄과 산불. 지구가 이 '해로운 기생충'들을 마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처럼 느껴진다.
SF영화를 보면, 미래 시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이 '혹'을 쌓아 올린다고 예측한다. 지상에서는 더 이상 살기 어려워져, 인간은 하늘 높이 솟은 빌딩 속에서만 살아가는 모습이 흔히 그려진다. 그 장면들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의 최종 목적지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오로지 '혹'만 붙여나가는 삶을 계속한다면, 인간은 결국 멸종이라는 드라마틱하고도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우리는 바퀴벌레가 아니잖은가. 이 거대한 '혹'들의 무게를 지구가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의 이 끝없는 욕망은 도대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이제는 정말, 웃음기 싹 빼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의 이 '혹' 만들기 대작전은, 과연 성공한 인생 이야기로 기억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