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 개똥철학 에세이
우리는 종종 밤하늘 별을 보거나, 과학 다큐멘터리를 통해 '멀티버스(다중우주)가 정말 존재할까?'와 같은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주 신비에 깊이 매료된다. 멀티버스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별빛 너머 삶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상상에 불과했던 개념들이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현실이 되었음을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목격해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스케치했던 비행 기계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로,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속 잠수함은 현대의 잠수함으로 실현되온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상상은 현실이 되어왔고, 멀티버스 또한 그 가능성 위에 서 있다.
특히 현대 물리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은 우리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이 해석은 우리가 특정 선택을 하거나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우주가 여러 개의 평행한 우주로 분기되며, 각 우주에서는 가능한 모든 결과가 실제로 발생한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마치 유명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가 블랙홀 내부에서 여러 차원의 우주를 경험하며 딸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처럼, 혹은 미드 <로키>에서 타임 변동 관리국(TVA)이 여러 시간선의 변동을 관리하는 것처럼, 우리의 '선택'이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상상은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멀티버스를 우리의 일상과 연결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나의 선택이 내일의 멀티버스 세상을 만든다.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상상한 선택이 그 세상으로 데려다준다'는 생각은 단순한 과학적 가설을 넘어, 삶을 대하는 우리 태도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철학적, 심리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마치 내가 원하는 미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리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 길이 실제로 펼쳐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와도 같다.
신을 향한 믿음과 멀티버스에 대한 상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인간의 본능적 갈망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종교적 믿음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희망과 위안, 삶의 의미 부여 방식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라는 구절은 보이지 않는 신과 구원을 믿는 신념이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상상한 선택이 그 세상으로 데려다준다'는 멀티버스 상상과 맥을 같이 한다. 마치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염원하면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처럼, 나의 의식적인 상상과 선택이 내가 원하는 평행 우주로 나를 이끌 것이라는 믿음은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동기 부여를 제공한다.
또한, 불교의 '일체유심조'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가르침으로, 현실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이는 나의 상상과 선택이 현실을 창조하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멀티버스 상상과 유사한 긍정적 자기 결정권을 부여한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업을 쌓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불교의 윤회 사상 역시, 우리의 현재 선택이 미래의 현실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멀티버스 이론의 '우주 분기' 개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이처럼, 멀티버스에 대한 상상은 신을 믿는 믿음이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하고 삶의 목적을 제시하듯이,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세계 혼돈 속에서도 나의 내면만은 굳건히 지키고, 긍정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러한 상상과 믿음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내가 정신적, 심리적 안정으로 얻으려는 게 뭘까?' 그리고 그 답이 단순히 돈, 부자, 경제적 자유와 같이 피상적인 것일 때,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깊이 파고들 필요를 느낀다. 과연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만족시키고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철학적 탐구를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스스로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의 목적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나 부는 그 의미를 찾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의미가 될 수는 없다.
심리학자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을 (진부하지만) 예로 들어볼까. 우리는 생리적 욕구(의식주)와 안전 욕구(경제적 안정)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인 소속 및 사랑의 욕구, 그리고 존중의 욕구(인정)를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선 최종 단계가 바로 자아실현 욕구다. 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아 완성하는 단계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돈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가치, 예를 들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나의 재능을 세상에 기여하는 것 등이 바로 이 자아실현 욕구와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지금 내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나는 왜 그것을 원하는가?',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와 같은 자기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가 필수적이다. 이 질문들은 우리를 삶의 피상적 층위에서 벗어나 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도록 이끌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일 수 있다.
멀티버스에 대한 상상과 선택의 자유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게 한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듯이, 우리가 진정으로 열망하고 가치를 두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통해 우리가 상상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결국, 우주의 광대함 속에서 멀티버스가 존재하든 안 하든,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서 발견하는 본질적인 욕구와 가치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삶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 나침반을 따라 나만의 의미 있는 길을 걷는 것이야말로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당신의 나침반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나?
"멀티버스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우리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