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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Jul 15. 2020

[소설] 해변의 사투-1

<산문적 소설> 중디 이원우

1. 산책을 위한 무장 


 오늘도 산책을 하기 위해 해변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태양은 수평선 위로 한 뼘 가량 위에 떠 있으므로 지금부터 2시간은 족히 저녁 햇살을 받으며 여유 있게 산책에 임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만약 태양이 수평선에서 반 뼘 정도 남아있었다면 쫓기듯 준비해야 하며 그렇게 하다 보면 꼭 준비물의 한 두 개를 빠뜨리게 되어 여간 곤란한 일이 생기고야 만다. 

 우선 그 날에 적당한 옷차림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스피커를 멜빵식 가방에 넣은 다음 그것을 목에 건다. 전에는 목에 걸지 않고 가슴 쪽에 찼더니 가슴을 조여 오는 압박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에 산책 중 은근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서 미리 내려 보온병에 담은 커피를 뒷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그다음 오랫동안 목에 걸고 다녀도 그 무게에 아프지 않을 정도의 크롭 렌즈 카메라를 챙긴다. 

 이렇게 산책에 필요한 마음가짐을 포함한 모든 장비의 준비가 끝났다고 확신이 들면 곧바로 자동차 리모컨으로 자동차 문을 잠근다. 그때 나는 "삐빅" 소리는 차 문이 잠겼다는 것을 귀로 확인하는 동시에 마음의 안정도 함께 확인하는 것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손으로 차 문을 당겨봐서 진짜 문이 잠겼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금까지 리모컨으로 잠근 후 잠기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왜 이러한 손수 확인 방법을 행해야 하는 이유는 정확하지는 않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아날로그의 습성에 젖어 온 인간의 디지털에 대한 꺼림칙한 불신일 것이다. 이러한 불신 습관은 집에서 외출할 때 꼭 다시 한번 가스 밸브의 잠금을 버릇처럼 확인하는 것이나 일본 전차 승무원들이 출발 전에 반드시 손동작으로 장치들을 확인하는 방식과 같은 것으로 제 손을 거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장인들처럼 육체의 감각으로 확인을 해야만 안정되는 아날로그의 유전적 습성이 몸에 짙게 배어 있는 인간들이 현대 생활을 이어가는 방식과 같은 것이다. 

 산책의 목적이자 최고의 포인트이며 산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얼마 전 구입한 포터블 스피커다. 정확한 품명은 JBL Flip 4이며 가장 최신 버전이다 가격에 비해 높은 성능을 가지고 있는 이 스피커는 초기 버전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비해 월등 높은 수준의 음향은 늘 들을 때마다 놀라고 있다. 얼마 전 당근 마켓이란 어플에서 저렴하게 나와 있어 구입을 하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그다음 날 더 싼 가격에 같은 제품이 나온 것을 보고 살짝 배신감이 들었지만 이것의 사운드를 듣다 보면 고마울 정도의 가성비에 가격 따위에 대한 배신감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이 스피커는 손에 들거나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도 있는데 그보다는 몸에 붙이고 다니는 편이 두 손도 자유로울 뿐 아니라 스테레오 사운드의 좌우 분리된 음향을 잘 분배해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다. 허리에 찰 수 있는 작은 가방을 구입해서 처음에는 허리에 찼는데 귀에서 먼 만큼 볼륨을 높여야 하므로 자칫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될 수도 있어서 귀와 더욱 가까운 곳에 위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목에 거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러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풍성한 사운드를 나 혼자 들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컬러 선글라스 효과처럼 나와 풍경과 사물들 사이에 음악의 필터를 여과하여 보이게 되므로 그것들은 즉물적인 것이 아닌 환상적인 영상으로 내 눈을 투과한다. 그리하여 내 앞의 세상은 전혀 색다른 아름다운 세상이 되고 나는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세상을 창조하여 그 세상에서 즐기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챙긴다. 카메라는 되도록 가벼운 것을 매야 한다. 오랜 시간 매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산책에서는 촬영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무거운 렌즈나 짐벌 등의 장비는 필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카메라를 무엇 때문에 가지고 걷는 것일까.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며 나 또한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이유이다. 만약 카메라 없이 스피커만 맨 나를 상상해보자.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 이상한 차림이란 말인가. 그들은 분명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할 것이다.

 " 뭐야 저 남자...", "얘 저 사람 뭔가 수상해 가까이 가지 마."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이런 괴상한 남자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일 것이 분명하며 나 또한 그들의 신경 쓰임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인 신경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복장에 카메라를 매게 된다면 나는 더 이상 이상한 어둠의 존재가 아닌 밝은 관광객으로 변신하게 된다. 사람들은 관관객에게는 유독 그 자유분방함에 관대해진다. 자신들도 관광을 떠날 때 현실에서 할 수 없었던 개성 넘치는 복장과 행동이 그 어디에서나 용인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현실을 탈출한 외도의 짜릿한 행위도 자연스럽게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관광객만의 특권 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생활에 적응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전력하는 사람이다. 특히 광적인, 혹은 미친 사람.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일반적인 안정된 생활을 변화시키거나 그런 보수적인 안정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반성의 품 안에서의 안정을 벗어난다는 것은 마치 도시를 벗어나 외딴섬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매우 불편하고 두려운 삶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회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산책에서 카메라는 촬영이 아닌 배려의 액세서리이다. 

산책의 시작점인 주차장 바깥의 바닷가 쪽 난간의 첫 번째 기둥으로 걸어갔다. 그 기둥엔 언젠가 갈매기가 싼 흰 똥 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흰 똥 자국을 산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출발하기 전에는 늘 전장에 임하는 군인들처럼 미묘한 긴장감이 살짝 맴돈다. 그래서 수축된 근육을 풀고 워밍업을 하듯 뒷주머니에서 커피가 장전된 보온병을 꺼낸다. 한 모금 또는 서너 모금 마신다. 아직 뜨거운 커피가 몸속으로 스며들면서 경직된 정신과 근육을 이완시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첫걸음을 뗀다.

걷기가 시작되자 수평선에 이미 반 뼘으로 가까워진 태양도 나를 따라 함께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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