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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Jul 15. 2020

[소설] 해변의 사투-2

2. 해변 증명사진 

 하루 중 아름다운 시간대는 두 번 있다. 한 밤의 별 하늘과 해 질 녘이다. 광대한 밤하늘에 이끌려 몇 백, 몇 만 광년을 헤매다가는 결국 자신의 깊숙한 곳으로 도착하게 만드는 별 하늘은 오직 밤에만 그것도 어두운 곳에서만 열리는 극장의 막 같은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일단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을 자서 각종 인공조명과 소음도 함께 잠들어야 하는 조건이 맞아야만 한다. 마치 우리가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때 주위의 작은 소음도 그 음악의 선율을 비틀어 엄청난 방해가 되는 것처럼. 인간이 어떤 것을 보려면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일단 눈을 떠야 한다. 눈꺼풀을 올리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볼 수 없다. 별은 원래부터 그곳에 항상 있는 것이지만 인간이 그 빛을 보기 어려운 것은 인공조명과 소음 그리고 무관심이라는 눈꺼풀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그 눈꺼풀을 올리기만 하면 보이는 것이지만 현대인에게는 그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휴대폰을 열었을 때 모든 별은 사라진다.

별은 태양처럼 에너지가 강하지 못해 존재감이 미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별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미 몇 억 년 전부터 그리고 태양보다 훨씬 전부터 이미 있었고 그 빛은 태고적부터 이미 우리에게 발사된 것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상기한다면 이 태초의 빛은 강약의 개념을 초월하여 영원과 불멸의 시원이며 때문에 인공적인 잡 광 들과는 섞이기를 거부하는 고고함의 원천이다. 이런 영롱한 별빛은 순수를 갈구하여 마음의 눈꺼풀을 열지 않는 한 아무에게나 보여지기를 거부한다. 

 한편 태양은 지구와 인류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하고 영향력 있는 존재이다. 지구와 인간의 생명을 지배하고 관장하고 있는 태양이므로 오죽하면 지구의 모든 종족이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고 있었지 않았던가.

태양은 인류에게 번영과 재앙을 주기도 하지만 또한 하루에 한 번씩 보너스 같은 선물도 하사하고 있다. 그것은 노을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열심히 일해 준 나뭇잎들 에게 가을이 되어 일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도 화려한 금빛 단풍의 옷을 입혀 풍성한 여생을 지내는 황금기를 주는 것처럼 태양은 온 세상 구석구석에 노을 쇼를 무료로 공연하며 인간에게 감성적 위로를 베푼다. 그리고 인간은 그 노을을 보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대지의 아름다움 그리고 부모와 연인에 대한 애정과 인류의 평화, 나아가서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심성을 싹 트이고 가꾸게 되었다.

 공기와 구름을 이용하는 빛의 노을 쇼는 대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며 매일 공연을 하면서도 그 컬러와 형태는 한 번도 같은 내용을 반복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쇼를 하루도 빠짐없이 관람하는데 공연은 산이나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특히 해변은 무대가 자장 잘 보이며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로열석과 같다. 게다가 지금 나처럼 공연 전부터 사전에 좌석 정보를 가지고 있고 푹신한 방석과 맛있는 음료를 준비하고 있다면 최상의 감동적인 관람이 될 것이다. 

 지금 공연을 앞둔 이 공연장의 로열석에는 나뿐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을 대충 분리하자면 관광객과 연인들, 반려견과 산책하는 사람 그리고 웨딩 촬영을 위해 온 신랑 신부와 촬영 스태프들이다. 그중에 관광객이 가장 많다. 그들이 이곳에 누구와 어떻게 왔는지는 모두 다르겠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촬영을 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관광객은 두 부류가 있는데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관광 그룹과 렌터카로 다니는 가족 또는 연인들이다. 이들은 대개 여행 일정이 정해져 있고 공통적으로 짧은 일정 안에 되도록 여러 곳을 다니는 바쁜 일정으로 쫓기듯 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 정한 것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이곳에서의 촬영도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중년의 단체 관광객들은 그들의 말씨로 보아 충청도에서 온 것 같은데 느릿느릿한 말투와 다르게 매우 쫓기듯 촬영을 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이런 말을 서로 자주 하고 있다.

 "어이어이~ 빨리빨리 좀 와", "야! 이러다 늦겠다", "야! 아직 안 찍은 겨?"

그래도 그들의 표정에는 이런 쫓김도 여행의 일부로서 익숙한 듯 즐기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주로 이곳에 대표적인 상징물 같은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곽지해수욕장>이라던가 <과물해변 목욕탕>처럼 지역 이름이 들어간 표지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는데 모두들 서로 배려하듯이 줄을 서서 찍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앞사람의 포즈를 보며 학습한 듯 대개 같은 포즈로 찍고 있다. 또한 모두 같은 표정과 포즈, 손동작을 하고 있는데 예전에 유행하던 손가락 브이자는 아주 노인들 외에는 하지 않았으며 주로 손가락 하트나 손 하트, 팔 하트 등을 연출한다. 어째서 모두 하트를 그리는 것일까. 아마도 누군가에게 보내는 하트 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보내는 하트로 보인다. 자신이 이곳까지 와서 여러 사람과 즐겁게 놀고 있다는 대견함에 대한 스스로에게 보내는 하트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의 일생 중에 몇 안 되는 풍요로우며 행복의 나날이라고 인생의 일기 속에 밑줄을 그어 강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찍고 있는 사진은 그 일기에 첨부하는 증거사진으로서 첨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료가 필요하므로 폰에 스틱을 연결한 일명 셀카봉을 이용해 최대의 광각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많이 담으려고 한다. 그것은 어쩐지 비록 먹지는 못하더라도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많이 차리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양의 미학과 겉치레의 과시욕을 닮았다.

 예전부터 흔히 말하는 "여행하는 거 딴 거 없어 남는 건 사진뿐이야"라는 속담은 모두 경험에서 생긴 것인가. 그들은 바로 이 사진 찍기를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했고 지불한 것 이상으로 실속을 챙기기 위해 그것이 연출이라도 관계없이 치열하게 찍어대는 것이다.

이들은 정말 짧은 시간 안에 요란하고 화끈하게 각자 사진 촬영을 마치자 인솔자에 부름에 따라 일제히 철수한다. 해변을 떠나는 그들의 얼굴에는 마치 전장을 정복한 승리의 군인들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이 묻어 있었으며 사진이란 전리품도 얻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미련이 없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버스에 줄 서 올라탔다. 그리고 그들을 태운 버스는 다음 정복지를 행해 내 달려갔다. 

그들이 황급히 떠난 자리에 연인들은 아직도 영혼을 바쳐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젊은 남녀들은 중년의 관광객에게 서는 찾을 수 없었던 전문 장비들이 눈에 보였고 연기에 있어서도 어쩐지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강했다. 그들은 휴대폰 카메라뿐 아니라 미러리스 카메라와 각종 렌즈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짐벌과 드론을 이용하여 촬영을 하고 있었다. 한 커플은 드론을 날려 요란한 비행음으로 주위 사람들은 살짝 놀라게 하고 있는데 드론의 팔로우 기능으로 바닷가를 걸으며 행복에 찬 표정을 촬영하는 듯하다. 그들의 표정에는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고 있는 드론이란 보다 상위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섞여있다. 연기 또한 과격할 정도로 몰입해 있어서 껴안는다거나 키스하는 장면을 거침없이 하며 연기의 혼을 불사르고 있다. 그들에게 수줍음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어째서 이렇게 도전적인 것인가. 연인들이 관광객들과 다른 점은 촬영의 결과물을 SNS 등에 과시하려는 목적으로서도 사용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그것이 서로의 애정에 대한 다짐의 행위이며 서약과 같은 것으로서 사랑의 증거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연인들은 이런 명확한 증거를 다양하게 확보함으로써 서로를 얽히게 하는 선들을 짜내어 언제라도 다투거나 그래서 헤어지는 불행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안전 방지턱들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또한 설령 그들이 헤어져서 또 다른 파트너가 접근할 때 새 애인이 그 증거물을 보고 구역질을 하게 만듦으로써 다시 재회할 가능성의 길을 닦아 둔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관계에 확신이 서지 않은 미성숙한 연인들 일수록 이런 전문 촬영에 망설이게 될 것이고 특히 바람기 있는 연애의 달인들은 자신에게 연애의 딱지를 붙이지 않으려 요령껏 피해 다닐 것이다. 그러나 어린 젊은이들은 이런 자물쇠와 같은 증거물로 위축되기에는 너무 다채색 기회들이 앞에 널려있고 그들의 가슴은 발화되기에 쉬운 뜨거운 온도를 가지고 있다. 

 이 연인들 사이사이에는 눈에 띄는 몇몇 촬영 팀이 있는데 이들은 연인들과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스케일 면에서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프로 집단이 있다. 신랑 신부와 그들을 찍는 웨딩 촬영팀이다. 제주도는 옛 부터 한국의 하와이 같은 신혼여행의 성지로서 지금 까지 수많은 신혼여행객들이 다녀갔는데 지금 중년에서 노년의 한국 부부들이 4분의 1 이상은 이미 이곳에서 신혼 촬영을 한 선배들이다.

그 당시는 주로 택시 운전사들이 촬영을 담당했지만 요즘 화질이 뛰어난 휴대폰이나 고화질 카메라와 안정된 삼각대, 그리고 뛰어난 성능의 짐벌과 간편하고도 효과적인 셀카봉이 그 시절 택시기사를 대신하고 있어서 이제 사진을 찍어주는 운전기사는 없다. 게다가 이제는 어설픈 자가 촬영이 아닌 전문가들이 기획을 하고 촬영과 제작을 하므로 연인들의 풋내기 촬영과는 레벨이 다르다.

그들의 촬영 현장 옆을 지나가면서 관찰을 했다.

 "자~ 여기 보고~"

 "얼굴을 왼쪽으로 돌리고~ 아니 너무 돌렸다"

 "이 카메라를 보면서 천천히 앞으로 걷는다~ 좀 더 천천히~"

 "자 이제 서로 손잡고 뛰어가는데 마주 보고 웃으면서~"

 "고 실장 드레스 뒤로 잡아주고~"

 "좋아 좋아"

 "자 이제 다른 장소로 이동"

 촬영 기사들은 마치 어린이집 교사가 애들 다루듯이 얼레고 달래면서 모델들을 유도하고 연출한다. 그리고 신랑 신부는 병원의 전문의 앞에서 진료를 받듯이 깊은 신뢰의 눈빛과 몸가짐으로 촬영 기사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임한다.

 어쩌면 이것은 마치 자신들의 행복 자체도 아마추어로서 스스로 기획하는 것이 두려워 비용을 들여 전문가에게 기획과 연출을 의뢰하는 것과도 같으며 청춘 시절을 졸업하고 결혼이라는 상급 과정에 진입하면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진로 전문가에게 이력서를 청탁하면서 변호사에게 자신들의 상급 과정에 진입했음을 법적으로 공증받는 것과도 같다. 그리하여 아직 사회와 맞대 보지 않아 불확실한 자신들의 개성을 낮추고 경험 많은 전문가의 지시에 다소곳이 따르는 것이다.

전문 촬영 팀의 스탭 들은 이곳의 어디에서 어떤 것을 연출하고 촬영해야 하는지 잘 아는 듯하다. 정해진 촬영 시간표, 이동 경로와 각 포토존에서의 쓰이는 장비와 소품들을 각자 맡은 임무를 알고 일사불란한 진행이 이루어진다.

 노련한 촬영을 모두 마치자 이제 막 어려운 실기시험을 마친 것처럼 기쁨과 홀가분함에 대한 박수를 쳤다. 하위 스탭 들은 소품을 챙기고 신부의 드레스가 끌리지 않도록 치마를 뭉쳐 둘러 안고 신부와 2인 1조로 더듬더듬 모래사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신랑 신부를 가까이서 봤는데 멀리서 볼 때 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는데 한층 평범한 얼굴과 서민적 몸짓과 말투였고 피부는 거칠었다.

신랑 신부는 평소에 없던 전문 촬영을 하느라 찍을 때 느끼지 못했던 피로가 몰려오는 듯 살짝 비틀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서 이런 힘든 노동까지 감수한 데에는 서로들 말은 안 했지만 마음으로 이미 교감된 한마디가 있다.

"일생에 한 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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