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저녁
고내리 낡은 마을 골목에는
낡은 고목이 있었고,
낡은 돌담이 있었고,
낡은 집이 있었다.
어쩐지
바쁜 것 같이 보이는 반들반들한 나.
느리거나 멈추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곳에서 시동을 끄지도 않은 채
차 안에서 통화를 한다.
잠시 후
낡은 골목 안에서 의혹에 끌려 나오는
허리가 고부라진 작고 가벼운 할머니.
섣부름을 누르지 못한 수줍음이 티 난다.
내 차를 봤고,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를 확인했다.
할머니 얼굴은 잔잔한 실망으로 어두워졌다.
그리고
끌려 나온 것의 역순처럼
다시 낡은 골목으로 되돌아 들어간다.
"할머니가 찾는 사람은 내가 아니였군요"
“그래요 할머니가 기다리는 사람은 남이 아닌
아들이고 딸이었어요”
곧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아들과 딸은
바쁘거나 빠르지 않았으면,
언제든 멈추어 엄마를 부려먹는
게으름뱅이였으면
어리광쟁이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