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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Jul 26. 2020

[시] 실망한 할머니

그 저녁

고내리 낡은 마을 골목에는

낡은 고목이 있었고,

낡은 돌담이 있었고,

낡은 집이 있었다.


어쩐지

바쁜 것 같이 보이는 반들반들한 나.

느리거나 멈추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곳에서 시동을 끄지도 않은 채

차 안에서 통화를 한다.


잠시 후

낡은 골목 안에서 의혹에 끌려 나오는

허리가 고부라진 작고 가벼운 할머니.  

섣부름을 누르지 못한 수줍음이 티 난다.


내 차를 봤고,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를 확인했다.

할머니 얼굴은 잔잔한 실망으로 어두워졌다.


그리고

끌려 나온 것의 역순처럼

다시 낡은 골목으로 되돌아 들어간다.


"할머니가 찾는 사람은 내가 아니였군요"

“그래요 할머니가 기다리는 사람은  남이 아닌

아들이고 딸이었어요”


곧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아들과 딸은

바쁘거나 빠르지 않았으면,

언제든 멈추어 엄마를 부려먹는

게으름뱅이였으면

어리광쟁이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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