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 Introduction
3일 전 LA를 떠났다.
샌프란시스코를 잠시 거친 후, 내가 닿은 곳은 바로 뉴저지 뉴어크 공항
맑다고도, 흐리다고도 할 수 없는 아침 공기가 갓 잠을 깬 공항 안에 감돌았다.
영화 <터미널>에서 외지인 빅터가 뉴욕의 공항에 처음 들어선 것처럼 얼떨떨한 느낌이다.
며칠 전까지 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도시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가 펼쳐졌던 도시에 간다.
내게 LA와 뉴욕의 차이는 그뿐이었지만, 또 그만큼이나 컸다.
LA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출입문 앞에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10년 만의 방문이었다. 이번엔 들어가는 대신 문 건너편 어린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어린 내가 저 안에서 영원토록 웃기를 한참이고 바랬다. 아이는 놀이공원에서 뛰어놀고, 다 자란 나는 또다른 도시로 향한다.
곧 발 디딜 도시, 뉴욕은 스크린 속에선 놀이공원처럼 안전했다. 하지만 스크린 밖에서 내가 그곳을 걷는 순간, 환상은 모서리부터 깨져갈 지도 모른다. 그 어떤 여행지도, 어떤 영화의 배경도 '현실'의 직면을 피할 순 없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의 여행의 기억도 떨쳐버릴 수 없다. 여행자의 신발 아래엔 현재와 과거의 여행이 모두 쌓여있으니까.
나는 뉴어크 공항에서 맨해튼의 펜스테이션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이제 내 마음은 어떻게 될까.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에 놀라게 될까? 상처를 받을까? 갑작스런 후회를 갖게 될까? 새로운 꿈을 찾을까? 혹은 내 꿈이 부러진 이유를 찾게 될까?
2008년 8월.
학교 미술실에 걸려있던 그 포스터가 화근이었다. 대문짝만한 다섯 글자, P.I.X.A.R를 보지만 않았어도.
삶에 거대한 파문을 남긴 그 여름밤, 나는 PIXAR 스튜디오의 20주년 기념 전시회에 갔다. <니모를 찾아서> <카> <라따뚜이>에 세 편을 특히나 좋아했던 나. 픽사 홈피에도 종종 들어가 각종 영화 관련 게임을 주구장창 했던 기억도 있다. 아무리 게임오버를 당해도 결코 질리지 않았던 영화 속 찰진 대사들을 어찌 잊을까.
다만 미술 수행평가 때만 방문하는 줄 알았던 예술의 전당이니만큼, 별 기대를 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픽사전은 첫 장면부터 놀라웠다. 입구로 들어가 암막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인트로덕션 구역이 나왔다. 한 벽면에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깔끔히 요약되어 있었고, 애니메이션 기술의 기초를 설명하는 모니터가 줄곧 3D 꿀벌의 모형을 내보였다.
촬영 금지로 생생한 증거는 없지만, 입구에서부터 들었던 그 끝내줬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트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전시를 즐기고 출구를 나올 대까지, 짧지만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신나는 콘서트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난 처음으로 '영화'가 아닌 영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 영화는 감독이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의 장면들을 뇌파 기계로 복제해서 스크린에 쏘는 게 아니었다. 즉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펜과 종이, 지우개가 무지막지하게 쓰이는 일들이었다. 메모장에 쓴 짧은 단어 하나가, 엇나간 스케치의 선 하나까지도 모두 영화의 일부였다. 뜯어진 연습장에는 <카>에 등장하는 자동차들이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며 말하는 짧은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4B연필을 쓸 때처럼 작가의 손자국이 남아있는, 지우개로 수정한 듯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그 스케치를 보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영화를 해야만 행복하겠구나’
마치 벼락에 맞은 것 같았다. 누군가 마법의 물감을 던져 흑백영화 속에 있던 내 몸에 색이 생기고, 이윽고 온 세상이 전부 색으로 채워지는 것처럼 모든 게 선명했다.
나는 부모님께 얘기했다. ‘나는 영화감독이 될 거야!’
부모님은 웃으며 말하셨다. ‘넌 꿈이 조변석개로 변하는데 퍽이나 오래가겠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밤하늘 별들 사이로 마차를 타고 날아가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댔다.
다시 2018년, 8월
그러나 거진 7년이 지난 후쯤엔, 한 여름밤의 꿈은 많이 지워져 있었다. 온실 속의 따뜻한 스케치를 보고 꿈을 꿔서 그런가? 내가 알지 못했던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내 꿈은 흔들리고 깎이고, 결국엔 부러져버렸다. 그래도 스물두 살 때까진 건재했으니 나름 오래 지켰다고도 생각한다. 억울한 건 다만 꿈을 못 이룬 게 아니라, 원래부터 날더러 꿈이 없었다고 종종 오해하는 남들의 시선이다(하긴 적지 않은 이들은 원래 다들 꿈없이 사는 줄 안다).
또 다른 고민도 있다. 그 꿈이 남기고 간 파편들을 정리하지 못했다.
꿈은 내 10대의 뼈였다. 뼈 중에서도 척추에 걸맞은 위치였다. 작은 성취부터 크나큰 실패까지, 소중한 사람들과의 자유부터 홀로 남아 버틴 구속, 순진한 설렘과 욕심과 질투, 누군가 건네준 선물부터 내가 먼저 고백한 순간. 뼈를 감싸는 근육과 핏줄엔 많은 것이 쌓이고 또 흘러갔다.
영화를 좀 지나치게 좋아하면, 보이는 모든 게 스크린 자체가 된다. 허나 그처럼 내 감정과 기억도 극장 속 자리처럼 번호 매겨 정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또 어렵다.
일목요연한 정리는 불가능하다. 뉴욕이라는 도시처럼.
마음이 부러진 후의 여행은 이전의 여행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오롯이 쌓여 내가 지금 밟고 선 지층이 된 시간과 꿈의 흔적을 잊는 것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또 그러면서도 난 아직 여행지의 환대를 바라고 있었다.
창밖으로 설피 흐릿한 하늘과 축축한 풀밭이 지나간다.
플랫폼에 내린 후 나는 캐리어를 끌고 역건물의 광장에 닿았다. 평범한 도색의 바닥을 때가 낀 운동화를 신고 걸어간다. 아직은 그저 소품처럼 느껴지는 행인들이 주위를 스친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걷다 보니 어느새 빛이 들어오는 유리문이 보인다. 육중한 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 유명한 회색의 펜스테이션 계단이 나타난다. 비둘기가 모여있고, 차와 도시가 쉴 새 없이 지나치는 회색빛 거리. 수많은 이들이 다른 의미로 부르던 이 도시의 이름과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동의어, 반의어, 유사어 그리고 예시 문장까지 줄줄이 딸려오는 단어사전처럼, 무엇을 떠올려도 그와 관계된 것들을 실에 꿴 듯 줄줄이, 또 거울에 반사하듯 이리저리 보여주는 도시. 영화. 음악, 길과 사람이 서로에, 서로에 의해, 서로를 위해 있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땅.
가장 소중했던 꿈과, 그 꿈과 함께 웅크려있던 기억들 앞에
여기, 맨해튼에서의 8과 2분의 1일이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