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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언젠간

NY #3. Washington Square Park

by 정동

'학창시절', 학교 다닐 때란 말이 대학 시절까지 포함한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다. 내게 학창시절은 어디까지나 중고등학교, 즉 교복 입고 다니던 시절을 의미한다. ‘학창시절에~ 함께 추었던~ ’으로 시작하는 곡을 배경으로 교복 입은 남학생이 등장하는, 출처 모르는 이미지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스무살보단 풋풋하고, 애기티가 나는, 더 철없고 어리숙한 공기가 흐르는 시절을 어쩐지 훌쩍 커버린듯한 성인의 시간과는 함께 부르기 싫었다.

그런 학창시절 중에서, 나는 특히 중학시절을 참 좋아한다.


중학교에선 봄에는 합창대회, 여름에는 수학여행, 가을에는 체육대회, 그리고 겨울에는 단체 극장관람을 했는데 한마디로 사시사철 설렐 거리로 가득했다. 2007년 신종플루로 인해 취소된 체육대회를 빼면, 3년 내내 온갖 행사들이 빼곡이 진행되어 철마다 날짜를 세가며 기다리는 재미들이 있었다.

이중에서 겨울 극장나들이는, 솔직히 몸으로 부딪히는 다른 세 행사보다는 임팩트가 작을 수밖에 없다. 바짝 긴장해서 반 친구들과 무대에 올라 노래할 일도 없고, 교관들 지도를 받으며 등산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의 겨울 세 번의 극장 나들이를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겨울 극장나들이를 끝낸 후, 꽤나 상기되었었던 고작 중1 내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각반 담임선생님들은 관람 전에 ‘몇 명이 어떤 영화를 볼지’ 할당 인원을 맞추어야만 했다. 관람후보작은 대개 세 편이었는데, 이때 내가 고른 작품은 <어거스트 러쉬>였다.

무슨 기준으로 골랐는진 기억이 없다. 왠지 재밌어보이는 예고편을 보고 마음이 동했었나? 천재 소년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기타줄을 치는 모습에 반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어거스트 러쉬>가 ‘August Rush’인줄도 모른채 친구들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일단 상영관에 들어섰다. 그리곤 말그대로 정신이 날아가버렸다.


나가는 길, 극장 문 앞에서 나는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목도리를 꽁꽁 감았다. 그리고 장갑 낀 손으로 가대에 쌓여있는 포스터를 한 장 뽑아들었는데, 그때부터 영화 포스터 수집이 시작된걸 보면 이 영화에 적잖이 감명받았던 것 같다.



계절이 점점 추워지고, 하늘은 파랗다기보다 밝은 회색빛인 날이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이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있다. 열심히 기타를 쳐보지만 사람들은 본체만체 지나가는 공원에서, 에반의 가방에 누군가가 대뜸 동전을 넣어놓는다. 동전을 넣는 손을 따라 카메라가 올라가면, 에반의 아버지가 서 있다-상영관을 가득채운 학생들 모두가 '헉'하고 숨을 죽였다-. 그 장소가 바로 워싱턴 스퀘어 파크다.


워싱턴스퀘어(이하 WSQ)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장식한다. 처음 부모님이 만나는 순간부터, 아들과 아버지가 잠시동안의 재회를 하는 장면 그리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러 달려나가는 순간까지.

개선문만 알았던 어린시절 내 눈엔 WSQ가 전연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때의 그리니치 동네 한복판 가로수 사이에서 여름 햇살을 받고 있는 WSQ를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문에선 누군가와의 ‘만남’이 이뤄질것만 같았으니까.


내가 WSQ에서 만난건 음악, 그리고 음악에 대한 기억이었다.






예쁘고 깔끔하기로 유명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점심을 먹고, 가로수가 만들어놓은 다양한 무늬의 그림자를 밟아가며 공원으로 향했다.



적당한 규모의 워싱턴 스퀘어 파크는 가운데 분수를 두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길이 놓인 형태다. 이리저리 뛰놀고 싶으면 분수 근처와 아치 밑을 뛰놀 수 있고, 잠시 쉬고 싶으면 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해도 좋은 곳이다.


공원을 한바퀴 거닐며, 분수에서 뻗은 길마다 어느 쪽으로 향하는가 구경하던 차, 빙그레 둘러선 사람들 사이에 웬 그랜드피아노 한 대가 떡하니 서있는걸 보았다. 청아한 피아노 소리가 정오 햇살 사이를 유영하는 그곳엔 굉장히 티셔츠를 입은 연주자 그리고, 피아노 밑에 누운 두 사람이 보였다. 엥? 연주자는 그렇다치고 피아노 밑에 앉은 저 사람들은 뭘까? 그들을 보고선 이번 연주자 순서가 끝나면 다음에 나올, 연주자와 같은 보헤미안 모임의 구성원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지나가는 관광객이었다. 얼마 후 연주가 끝나자, 안경 쓴 연주자는 다음으로 피아노 밑에 누울 ‘지원자’를 찾았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20달러를 내고 피아노 밑에 누워서 볼 수 있는 것은 건반을 누를 때마다 망치가 연결된 끈과 나무를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다음 지원자는 무려 셋. 가방을 베고 피아노의 배를 바라보는 최적의 자세를 취한 지원자들을 두고, 연주자는 간단한 설명 끝에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그늘진 가로수 아래를 다시 한번 누빌 두 번째 곡은 드뷔시의 ‘달빛’이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최첨단 고퀄리티 음향을 자랑하는 공연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맑은 소리를 그대로 듣는 것도 참 좋지만 – 뻥 뚫린 공원에서 흘러나가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만약 내가 소리라면 나는 전자보다 후자를 택할 것 같다. 어디든지 닿을 수 있으니까, 무엇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으니까.



'달빛'을 듣고 난 후엔, WSQ 인근의 ‘Generation Records’를 포함한 레코드샵 서너군데를 갔다. ’단순 구경이 목적이었지만, 사실 목표 아닌 목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했던 CD를 찾는 것이었다.


언젠가 좋아했던 사람이 나와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는걸 알고 하루종일 기뻐 날뛰다가, 특별한 날에 선물로 그 곡이 담긴 CD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국내엔 단 한 장도 없어서, 뉴욕의 어떤 레코드샵에서 해외배송으로 샀었다. 그래서 혹시 같은 도시 레코드샵 어딘가에 또다른 CD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수의 성이 B여서 B 색인을 죄다, 전혀 상관없는 장르 색인까지 다 찾아봤지만 결국 없었다.


나는 음악의 힘에 대한 이상한 믿음이 있다. 총보다 펜이 강하다면, 펜보단 노래가 강할 것이다. ‘음악은 만국 공용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선지 음악으로 인연이 연결되는것만큼 특별한 일도 없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는건 나와 그 사람이 같은 취향을 공유한다는 걸 넘어, 두 사람 다 이 세상에 없는 그날에도 세상에 아직 남아있을 그 곡의 흐름에 우리가 함께 담겨있을거라는 뜻과 같아 무척 기뻤다. 노래나 별처럼 한 인간보다 오래 살 것 같고, 더 널리 퍼질 수 있는 것으로 함께 묶일 수 있는건 기적이라고 밖엔 표현할 수 없다.






흔한 이별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러나 스무살이 넘어가면서부터 나는 이별 노래가 ‘나’ 자신에 대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다. 아무런 흠집도, 소음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가기에, 떠나는 것 자체도 깨닫기 어려운 내 안의 ‘나’ 말이다.

WSQ에서 내가 듣고팠던 노래는 원래 영화 피날레를 장식하는 ‘August Rush Rhapsody’였는데, 이러저러한 생각들은 나를 작품의 또다른 테마곡 안으로 끌여들였다. John Legend가 부른 ‘Someday’, 이 노래를 다시 듣는 지금의 나는 떠나간 어린 ‘나’를 떠올린다.

As days go by and fade to nights
I still question why you left
I wonder how it didn't work out
But now you're gone
And memories all I have for now...


레코드샵과 대학서점 구경을 마치고 해가 기울 무렵 다시 돌아왔을 때, 공원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들, 밴드, 솔로연주가들, 관광객들, 놀러나온 친구들, 연인들,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의 미소를 보게 된 것은, 내 바로 옆을 지나가는 비눗방울들을 발견했을 때였다.

분수 바로 옆에서 너무나도 쿨한 표정으로 한 남자가 쉴틈없이 비눗방울을 만들었고, 주위에 모여든 아이들은 눈앞의 방울만큼이나 투명한 미소들을 짓고 있었다.



여기까진 참 좋은 그림이었는데, 갑자기 황당한 일이 생겼다.

두 눈에서 퍼뜩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나도 저렇게 웃고싶다.’


카메라까지 꺼뒀으면서, 뭘 더 불안해하고 의식하고 있었던걸까. 여행이 과연 완벽할지를 걱정하고, 또 완벽한 여행을 마치더라도 그 이후까지도 걱정 속에 휩싸여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애써 모른척했지만 끝내 잊을 순 없었다. 가슴 속에 영원히 치우지 못할 납덩어리 하나가 들어있으니, 난 앞으로 다시는 저 아이들처럼 웃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토록 끔찍한 내 불안의 근원은, 사실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 불신은 3년전 겨울로 거슬러 간다. 첫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과도한 불안에 시달렸다. 나와 영화의 관계보다, 영화를 하는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남의 관계만 생각했다. 편집에 도무지 집중하질 못했고 그 결과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결과물을 냈다.


빔 프로젝터를 통해 영화가 스크린에 비춰지고, 처음 10여분간 영화는 멀쩡히 흘러갔다. 그러나 중후반부쯤, 미처 덜어내지 못한 사운드가 갑자기 배우의 대사와 겹쳐 들렸다. 심지어는 배우의 OK컷 대사와 NG컷 대사가 같이 들리기까지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음향 사고.

관객들은 비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질을 했다. 나는 얼굴이 붉다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이유를 생각할 새도 없이, 생전 처음으로 ‘영화가 틀어지는 공간’이 내가 들어설 수는 없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 고향중 고향인 영화관에, 영화와 관련된 모든 곳에 나는 들어설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아직 다 쌓지도 못한 집이 미처 손댈 틈도 없이 와르르 무너지고, 그 잔해에 내가 깔린 것처럼 괴롭고 답답했다.

안그래도 제작할 시나리오 투표에서 떨어지기까지 했던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무언가 뚝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그날, 꿈의 뼈에 간 금은 기어코 뼈를 작살내고 말았던 것이다.


But no, it's not over
We'll get older, we'll get over
We'll live to see the day that I hope for
Come back to me I still believe that ...


날 지탱했던 꿈이라는 두 다리가 부러져 걷지 못할 지경이 됐는데도, 나는 기어코 두 번째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내 명분은 ‘떠날 때 떠나도 한번은 더 하고 떠난다’였다. 내가 유약한 멘탈과 재능 부족으로 영화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 해도, 한번은 더하자. 너무 사랑하니까.

이전해와는 달리 나는 새해의 절반을 새 작품 구상하고 만드는 데 썼다. 방학동안 스트레스를 과도히 받아가며 아무래도 역부족인 단편 시나리오들을 습작해봤다. 그러다 결국 ‘될대로 돼라!’ 식으로 썼던 각본을 들고 찍었는데, 결과는 동아리 영화제 상 두 개였다. 별것도 아닌데, 난 그때 별나라에라도 간것마냥 행복했다.



... we'll get it right again
We'll come back to life again
We won't say another goodbye again
You'll live forever with me


아이러니한 사실은 상 두 개중 하나가 ‘음향상’이라는 것이다. 미숙한, 아니 정신을 못차린 편집으로 음향사고를 내놓았던 내가 음향상을 받다니. 물론 영화의 소재가 ‘소리’였던 것도 한몫했겠지만 어쨌거나 참 얼떨떨하면서도 웃겼다.

이때 경험 때문에, 이후엔 음향에 대한 집착이 생겨서 영상만들 때 음향을 직접 손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게 됐다. 죽도록 창피했던 그 경험 덕택에 ‘음악’을 비롯한 소리들이 더 좋아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고마운 마음도 든다.

물론 가장 다행스러웠던 것은, 영영 떠나버릴지도 몰랐던 꿈의 기차를 그래도 간신히, 조금이나마 더 붙잡아둘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워싱턴스퀘어파크. 웨스트 – 이스트 빌리지의 레코드샵과 라이브카페 그리고 작은 공연장들의 중심인 이곳은 사람과 음악을, 음악과 기억을,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작은 공원이다. 8월의 바람에 잎사귀가 부드럽게 나부끼는 그곳에서 언제까지고 모든 것들이 만나기를, 만난 모두가 노래하기를.






<어거스트 러쉬>를 본 그 겨울 눈에 찍힌 발자국은 다음 해 봄을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해 2008년 뜨거운 여름밤의 공기 안 어딘가를 누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도, 교복 입는 시절을 전부 졸업해버린 순간에도, 무엇보다 믿어온 오랜 꿈이 내 방 밖으로 걸어나가버릴 때까지도 저벅저벅 이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And someday, someday
We'll be together
Someday, someday
We'll be together...


2018년, 이젠 정말로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된 내가,

맨해튼 한가운데 흰 아치 아래서 음악을 다시 만난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다음번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땐 내 꿈과 나의 어린시절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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