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쪽지] 뉴욕의 빛

NY #2-2. The Empire State Building (ESB)

by 정동


기억이라고는 타임스퀘어 어딘가,

Toys'Rus 문을 열고 느껴지는 후끈한 공기와 굴러다니는 은빛 껌종이밖에 없었던 첫 뉴욕 여행,

자그마치 14년 전이다.


그때 웬만한 랜드마크는 눈으로 봤으니 두 번째 여행땐 랜드마크에 집착하지 않겠다 결심했는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SB) 만큼은 꼭 가고 싶었다. 이유는 참으로 단순했다. ‘킹콩’이 매달렸던 건물이니까.


에펠탑에서 에펠탑이 안보이듯 ESB에서 ESB가 안보인다는 사실은 정말 아쉬웠지만, 그래도 어릴 때 ‘여긴 누구 나는 어디’ 우왕좌왕하던 때완 달리 나름의 지각을 갖고 여행할테니 새로이 뉴욕의 야경 하나쯤은 눈에 담아보고 싶었다.


ESB의 전망대는 총 세곳 75층, 80층, 120층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중 두번째 층만 야외였다. 철창으로 두른 이곳에서 한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두 주인공이 만났다.




그와 달리 120층은 유리창으로 사방이 막혀있다. 이곳에서 한바퀴를 돌며 동서남북 야경을 모두 눈에 담은 후 북쪽 야경창에 좀더 오래 머물렀다. 80층에서 볼때보다 더 가파르게 보이는 거리와 빌딩들 한 가운데 타임스퀘어의 불빛은 이 땅의 모든 ‘열광’은 다 모아놓은 듯, 매우 어지럽고 뇌쇄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단 그것만이 내 시선을 사로잡은건 아니었다. 북쪽 창에서 볼 수 있는 미드타운 맨해튼의 모습은 이랬다. 키 높은 검은 빌딩들의 온몸에 네모낳고 노란 점들이 다닥다닥 박혀있는 모습. 그 모습은 컴퓨터 기호같기도 했고, 공중에 떠있는 아날로그 필름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곳에선 이 점들이 아예 야간열차가 서있는 것처럼 불빛의 띠를 이루기도 하고, 어떤 곳에선 불빛의 색이 노랗다기보다 좀더 붉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장 많은건 노란색 불빛이어서 간혹가다 파란색, 혹은 다른 색으로 이루어진 불빛을 발견하면 꽤 신선해보일 정도였다.


좀더 오래 보면 커다란 검은 네모들과, 노란 불빛으로 보이고 이내 네모들의 존재는 인식도 안된다. 그냥 노란 불빛만 떠 있는 것 같다. 검은 컴퓨터 화면에 노란 점들이 이진법 숫자들 010101...처럼 무작위로 배열된 느낌.

그러다가 다시 검은 네모들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해보니, 이 빌딩들은 무지하게 높다. ESB 120층의 높이여서 그렇지 지금 노란택시가 사거리 좌회전으로 느릿느릿 들어오는 저 길바닥에서 이 네모들을 바라보면 어디가 빌딩의 옥상이고 밤하늘인지 분간이 안될 수준일 것이었다.

그 높은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놓인 모습. 그게 맨해튼의 북쪽야경이었다.



단순히 ‘예쁘네’로 가볍게 시작한 감상은 어느 순간 불안과 초조로 이어졌다. 어떤 도시 야경을 이리 진지하게 바라본 적은 없었지만, ‘오래오래 빛났으면 좋겠다’는 무언의 바램이 스멀스멀 내 안에서 올라왔다면 이건 정말 꽤나 오래 본게 아닐까 싶다.

왜냐면 대부분의 야경을 봤을 때 난 그저 내가 이 광경을 더 오래 볼 수 있음 좋겠다-는 생각에 그쳤기 때문이다.


재난 영화에서 물에 잠기거나 꽁꽁 어는,

히어로 무비에서 부서지고 뒤틀리는 그런 뉴욕을 익숙하게 봤으면서,

뉴욕의 불이 꺼질거란 상상은 참 해본 적이 없다.


무구한 열정들로 쌓아올린 저 네모, 지금 이순간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속에 치솟는 욕구와 소망, 꿈처럼 빛나는 노란 불빛들이 결코 꺼지지 않길 바란건 왜였을까.

저것이 사람이 들어간 건물이란 사실도 잊을 정도로, 노란 불을 덫처럼 붙잡고 있는 어둠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면서도.






It's like my 20s.


뉴욕의 야경을 바라보며 이 도시는 꼭 나의 20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유의 스물셋에 그런 가사가 나오지 않는가.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 오늘 믿던 것이 내일은 바뀔 것만 같은 순간의 연속들. 매순간 분명 무언갈 믿는데도, 그 믿음이 지속되지 않을까봐, 또 그것에 비난받을까봐 두렵기도 하면서 자신에겐 솔직해지고 싶은 날들.


뉴욕은 그런 방황하는 마음 속 몽상과 바램을 죄다 모아놓은 도시같다. 월가의 셔츠가 끌릴 때도 있고, 이스트 빌리지의 라이브카페가 끌릴 때도 있다. 때론 독특하게 첼시나 차이나타운에 가보고 싶기도 하고, 미드 <섹스 앤더 시티>에서처럼 멋지게 치장한 채 소호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인턴>이나 <유브갓메일>에서 보듯 그리니치의 가로수길에서 쉬어도 보고 싶고. <버드맨>에 나오는 것처럼 브로드웨이를 마구 뛰어다녀 보고싶기도 하고.


만족과 불만족, 예술과 자본, 꿈과 좌절, 사랑과 상처, 자유와 투쟁.



이들이 내 안에서 불협화음으로 남아있지만, 다 나의 일부인 것처럼 - 뉴욕의 불빛도 사실은 썩그리 조화롭지만은 않으면서도 그 도시를 이루는 온전한 일부로 존재한다. 점점이 발하는 빛들은 서로를 배려한다기보단, ‘나 여기있어'라고 일단 호기롭게 외쳐본다. 조금이라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더 애써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어찌보면 일률적이지만, 어찌보면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땀과 눈물방울이기도 한 빛의 점들.

맞다. 뉴욕의 빛은 밝은만큼이나 ‘많았기’에 보는 이를 사로잡을 수 밖에 없다. 이 도시는 에펠탑이나 도쿄타워 등 하나의 타워 랜드마크가 집중된 시선을 받는 곳이 아니다. 뭐, 유럽식 건물보단 촌스럽다곤 할 수 있겠고, 혹은 내가 소름끼쳤듯이 ‘욕망’의 발로인 검은 빌딩들로 이루어졌다 할 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빌딩숲속에선 아주 작은 전구까지도 버젓이 자기 위치를 드러내기에, 이 도시는 다른 도시와 같지 않게 된 것이다. 다른 도시들보다도 더 주목받는, 또다른 이름 뉴욕이 된 것이다.


마치 수많은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한 벽면에 새롭고 신기한 그림을 만들어내듯, 모든 빛이 고루고루 나눠져 한 도시를 이루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그건 물리적인 빛뿐만 아니라, 장소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하며 음악이면서도 영혼이기도 하다. 빨려들어갈듯 강렬한 미드타운의 불빛, 저층의 낮은 건물들 때문에 밤의 덤불숲을 보는 듯한 이스트 빌리지까지 - 검은 것과 그 안에서 발하는 빛들은 제각기, 움직이지 않는 그들만의 춤을 추고 있다. 바로 이 지금에도.


keyword
이전 03화원치 않은 적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