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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은 적 없는

NY #2. Wall Street

by 정동

전날의 피로는 모두 뉴저지의 숙소에 맡겨두고, State Transit 버스에 몸을 실은 채 두번째로 맨해튼에 발을 디뎠다.


여행을 할때마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가장 맘에 드는 지도를 찾고, 가장 가고픈 곳들을 형광펜으로 색칠해놓는다. 버스 안에서 뉴욕 지도를 보니 갈곳은 많고 많았지만, 아직 이틀차밖에 안되어 이 도시가 어떤 위풍당당함을 보여도 압도당하지 않을 자신이 넘쳤다. 남쪽에 모여있는 오밀조밀한 빌딩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보고 싶었고, NYSE 앞에서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간 미디어에서만 보던 이 건물의 생김새를 찬찬히 뜯어보고만 싶었다.


렇게 월 스트리트를 고르고 나선, 사실 '여기서 얼마나 놀랄 수 있나’ 궁금하면서도 떨렸었다.






고1 때 <화폐전쟁>이란 책을 읽었다. 내용이 뭔진 전혀 몰랐고 그저 제목이 너무 멋있어서 책을 들었는데, 금융사라는 다소 생소하면서도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내용이 물흐르듯 쉽게 전개되어 꽤 재밌게 (절반만) 읽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금융제국의 황제 로스차일드 가문 이야기가 아마도 내가 가진 거대하고 으리으리한 월가 이미지의 선조인 것 같다.


그 이후에 "월가가 대체 어떤 곳인가" 나름 그려보는 데 영향을 끼친 영화 세 편이 있다.




우선 고등학교 시절 봤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월가의 은행과 증권사, 대기업이 이익을 위해 개인과 사회에 저지른 졸렬한 일들을 고발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월가에 대해 ‘뭐 이런 극악무도한 데가 다 있어?!’라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마치 악당의 이름을 외우듯, JP모건이나 체이스맨해튼같은 굵직한 회사들을 외고 백과사전에 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의 분노는 대학 새내기 시절, 단순히 오스카상 후보라는 이유로 봤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이하 더 울프)>의 쇼킹함에 비할 게 못됐다. 세 치 혀로 누구나 설득할 수 있는 조던 벨포트가 뜻맞는 동료들과 함께 (불법) 펀드회사를 운영하여 거부가 되고, 마약을 비롯한 온갖 방탕한 이들에 빠져사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골자다. 글로만 보면 방탕의 수위가 짐작이 안되겠지만 작품을 보았을 때 그 수위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 물론 이 얘길 어떤 지인에게 했더니 내가 너무 순진하게 컸다는 대답을 들은 바 있다. 이후의 여러 영화 감상 경험에 따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긴 하나, 어쨌든, 그 당시 잘 먹지도 않는 리모콘을 갖고 <더 울프>의 몇몇 장면을 띄엄띄엄 보느라 고생깨나 했던건 사실이다. 물론 수위만큼이나 스토리 자체도 사람을 혼미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기억 남는건 돈냄새와 금기름으로 이루어진 ‘광란의 파티’ 그리고 그걸 지탱하는 ‘끝없는 욕심’의 잔상 뿐.

그에 비하면 90년대 작품 <월 스트리트>의 플롯과 스토리는 단순하다. 버드 폭스라는 일개 주식중개인이, 게코라는 투자거물을 만나 인생 역전을 하게 되지만, 워낙 불법적인 방식으로 돈을 긁어모은 게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몰락하는 이야기. 그렇다고 작품이 남기는 잔상이 없느냐 그건 아니다. <더 울프>가 재기를 넘어선 광기찬란한 욕망 스토리였다면 <월스트리트>는 욕망이란 주제를 별다른 치장없이 다룬 클래식 스토리다. 욕망과 파멸 플롯은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이 작품에서 그 플롯은 유독 깔끔하고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어쨌거나 뉴욕에 처음 발디딘 어제 고층빌딩을 입 벌린채 바라보기만 했으니, 월가 건물들은 또 얼마나 나를 벙찌게 할지 살짝 걱정까지 들 지경이었다. 빵집 앞에서 빵굽는 냄새가 나는 것처럼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에선 지폐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지하철 월스트리트 역에 내렸을 때 주위 풍경은 실망스럽게도 그 정돈 아니었다. 그럼에도 건물들이 빼곡이 들어찬 월가 부근은 다시 목디스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긴 하다. 다만 내 상상이 얼마나 터무니 없었는지, 또 그럼에도 틈만 나면 영화로 꾸며진 상상을 어찌 그리 현실에서 찾으려는 마음이 본능처럼 사라지질 않는지 우습기도 했다. 엄한 표정의 경비원들이 서있고, 수트 입은 증권맨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대형 증권투자사 간판이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 내 상상과는 달랐어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아주 조금일지언정 ‘실망’을 한 나 자신을 보니, 나 역시도 터무니없는 광기를 썩그리 싫어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월스트리트>의 버드 폭스나 <더 울프>의 조던 벨포트같은 욕망 빌런에 100% 단호히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들을 주인공으로 두 시간이 넘는 스토리가 진행될 수 있는게 아닌가. 보는 이가 몰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걸지도 모른다.

물론 다큐멘터리인 <자본주의:러브스토리>의 기업들이 (마이클 무어의 조사와 전문가들의 인용에 따르면) 전부 실제 저질렀다는 행위들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월가’를 간판에 내건 두 극 영화 주인공들에 대한 질타와 비난이 순도 백프로는 아닐 수밖에 없다. 단순히 사기를 치고 범법을 저지르면서 최고의 부를 얻어내는 꿈까진 아니더라도, 나 자신은 언제나 시시각각 욕망을 더 좇을까 말까, 선택할까 말까로 고민한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려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도 욕망이니까.


다만 월가에선 그렇게 윤리적인(?) 문제 따윈 생각이 나지 않는게 문제다. 그 소박한 것들이 셀 수 없이 모이고 쌓인 것들이 월가 빌딩들이지만, 물질적 욕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판에서 ‘하루 한 격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겸손한 성찰을 하긴 힘들어 보인다.



증권거래소 옆에는 미국 독립사에서 중요한 페더럴 홀(Federal Hall)이 있다. 워싱턴 대통령의 취임 장소이기 때문에 건물 앞엔 조지 워싱턴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이곳은 초창기 미국 의회 그리고 세관 청사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독립의 일출이라 볼 수 있는 미 독립선언서의 이 구절은 독립 후 이곳 페더럴 홀에서 더 높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미국사 특히 독립사를 돌이켜보면 '자유'와 '민주주의' 성공의 좋은 예라는 경탄이 절로 흘러나온다. 사실상 서구문명권에선 오랜 세월 미지의 세계였던 땅에, 비록 수많은 피의 대가가 있었지만, 도시와 국가를 세우고 그곳에 유럽으로선 천년 넘게 이루지 못한 자유민주주의 정체를 뿌리박았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1, 2차 대전 혹은 남북전쟁만큼이나 많은 영화 혹은 드라마의 소재가 되진 못했단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로 분명 귀감이 될만한 역사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금융가 한복판의 페더럴 홀이라? 남부부터 성장했던 맨해튼의 성격상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한곳에 모이는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페더럴 홀이 국립기념관으로 변모하고 정치의 중심은 워싱턴으로 옮겨간 지금, 페더럴 홀엔 독립 당시의 횃불같은 이상과 실천의 정신이 '박물'의 형태로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누구나 공짜로 방문하여 자유와 권리 수호가 승리한 역사를 보고 감명받을 수 있으나, 그것은 하필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인간 사회의 '물질적 욕망'의 거리 한복판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석유를 실은 배가 좌초하여 검은 기름이 바다에 퍼지고, 급기야는 흰색 갈매기의 눈가에까지도 시커멓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듯이 물질적 욕망은 사람과 사회를 더럽힌다. 페더럴 홀은 월가를 구동시킨 이념적 심장이었지만 지금은 월가가 기름떼 묻은 그물이 되어 페더럴 홀을 천천히 잠식하고 있다. 건물 벽에 먹물같은 기름이 묻어나는 현장은 <자본주의:러브스토리>처럼 금융재벌이 이익을 위해 건국 정신을 배반하는 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물론 월가와 배터리파크 인근에 있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다. 베트남전도 복잡한 정치경제적 이유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으로 유명한데, 월가 코앞에 한 미 병사의 편지가 유리벽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뉴욕이란 도시를 언급할 때 흔히들 자유를 얘기한다. 나이, 성별, 인종 무엇에든 상관없이 포용하는 곳. 그러나, 그 자유는 어디까지나 누군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만 허용된다. 단순히 일하는 능력뿐만 아니다. 이를테면 기적의 스토리, 늙고 가난한 홀애비가 어느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청중을 울리는 재능을 선사한다? 학교에서 왕따만 당하던 아시안이 특출난 재능으로 대학에선 장학금을 받고, 유명 회사에 입사한다?

그같은 재능도, 결국엔 주류 사회에 '돈'을 벌어다주는 재능이기에 인정받을 뿐이다. 뉴욕이 두팔벌려 환영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보이는 것과 달리 '경제적' 능력이 월등히 높은 사람. 재능이든 배경이든 간에 이 도시에, 기존 사회에 돈을 벌어다줄 수 있는 자들이 환영받는다.

그렇게 따지면 뉴욕이란, 미국과 자본주의에서의 자유란, 사실상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대학 2학년 여름, 한 방송사 아르바이트로 하루종일 학생들 인터뷰를 따러 다닌 적이 있다. 무더위에 지친 영화동아리 선배가 갑자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예전엔 금융재벌이 되고 싶었거든요? 근데 어쩌다 이러고 있는건지...”


그때 “둘다 하면 되잖아요” 라는 참으로 철없는 대답을 내뱉었는데, 그 바탕에는 영화로 성공해서 돈을 모으고 금융은 아니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부자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공상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선배가 정말 원한다면 말이다.

그 선배가 꿈꾸던 금융재벌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엉뚱한 궁금증이 인다. 선배는 월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보며 이제 무슨 생각을 하려나. 월가에 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돈 그리고 영화라는 꿈을, 돈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둘다” 완벽히 가질 수 있는 경우란 없다는걸 – 두 극단의 삶을 꿈꾸어본 그 선배는 좀더 잘 느낄 것만 같았다.

사실 나라고 선배와 비슷한 꿈꿔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재벌'이라기보단 '부자', 더 정확히 말하면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싶긴 했다. 그 마음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렸을 적 그에 대한 접근법-영화를 하며 돈을 실컷 벌어야지! -이 모래성같은 망상에 불과했다는게 문제였을 뿐이다. 선배가 말하듯 '이러고 있'으면서 상상하는 만큼 부자가 되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시간이 지나서야 망상보단 실천이 먼저여야하고, 현실적인 계획이 밑바탕되어야한다는걸 깨달아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애먼 꿈만 탓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돈만 생각하다 내 일을 진실로 좋아하는 감정을 어디 블랙홀같은 곳에 송두리째 뺏겨버릴 수도 있다는 그 사실에 대한 주의를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도 놓을 뻔하기 직전에 깨달은 것이지만.


한편, 어른이 된다고해서 돈과 꿈의 균형 잡는게 쉬워진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꿈을 좇기 위해 돈을 좇다, 돈이 꿈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그리고 혹자는 꿈 이전에 생존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더 울프>에서 한방 먹은 장면이 있다.

주인공 조단 벨포트(디카프리오 扮)가 FBI의 조치에 따라 자신이 직접 세운 불법 주식투자 회사를 떠나야만 했을 때, 그가 직원들 앞에서 이런 연설을 한다.


“모두들 키미 벨져 알죠? 키미는 우리 회사에서 초창기부터 일했던 브로커 중 한명이에요. 여러분 모두 지금의 키미가 예쁘고 세련된 여자라는걸 알죠. 그녀는 3천 달러짜리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신형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아요. 그녀는 겨울을 바하마에서 보내고 여름은 햄튼에서 보내죠."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추켜세우는 조던 앞에서, 키미는 입고 있는 정장을 뽐내며 당당한 표정을 내보이고, 사람들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보인다.


그러나 조던의 미소는 돌연 가라앉는다.


"하지만 제가 처음 만난 키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가 처음 만난 키미는 동전 두 잎조차 없었습니다

그녀는 8살짜리 아들을 등에업은 싱글맘이었고, 월세가 석달치 밀려있었다고요.

그녀가 제게 같이 일할 수 있을지 물었을 때, 그녀는 5천달러를 가불해주면 안되겠냐고 물었죠. 단지 아들의 학비를 지불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죠 키미?"


"2만 5천불짜리 수표를 써주셨어요..."


"왜그랬는지 알아요? 저는 당신을 믿었거든요, 당신을 믿었다고요. (좌중을 바라보며) 여기 있는 여러분 하나하나를 믿는 것처럼요."



구속을 앞둔 사기범치고 참 뻔뻔하면서도 능글맞은 대사가 아닐 수 없다(비록 목멘 소리로 말했을지라도). 마치 죄를 짓고도 '의리'와 '우정'을 과시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때 조던의 태도보다도 키미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돈 때문에 힘들던 과거를 떠올리자마자 입술을 씹으며 눈물을 참는 모습을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며, 돈이 꿈이 되는 일을 무조건 탐욕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걸 깨달았다.

<더 울프> 마지막에 조던을 체포했던 FBI요원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부자들이 나오는 광고를 보고 뚱-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그래서 참 집요한 감독의 말로 느껴진다. 맞아, 모두들 돈을 신경 쓰지. 악착같이 달려들고, 기어오르는 것만이 돈을 원하는게 아니야. 그 누구도 돈을 원하지 않은 적은 없어. 솔직히, 원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다들 원하고 있잖아?


이게 다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어떤 시스템에서든 물질과 소유와 과시는 꿈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으로 벗어나겠다는 것이 ‘꿈’이라면, 그것 또한 응원하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이 세상 누구도 온전히 돈만 선택할수도, 또 자유, 혹은 흔히 말하는 ‘인간다운 삶’ 만 선택할 수도 없다. 이 둘은 한 인간의 삶에 평생토록 함께 굴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그래서 할 수 있는게 없다. 왜 이렇게 됐는가를 파악하자면 근거로 댈 단어들은 수도 없이 많다. 자원, 재화, 희귀성, 본질적인 욕망 등등. 그러나 그 모든 말들이 갇힌 어둡고 깊은 해구를 탐사하느니, 차라리 목빠지게 높은 월가의 빌딩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는게 나을 성 싶기도 하다.






월가 그리고 시청으로 이어지는 42번가에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NYSE를 뒤로 하고 북쪽으로 올라가는 동안 빌딩들의 노란색, 주홍색 네모난 불빛들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교회 종이 세 번 울렸다. 바람에 종잇조각이 굴러가는 소리, 버스 지나가는 소리, 공사장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발소리가 종소리의 여운 뒤편에서 낮은 자세로 따라왔다.


치열함.


고개를 천천히 올리며 꼽아보는 주홍불빛 유리창의 개수를 세다보면 절로 떠오르는 말이다. 금융가를 다루는 많은 영화에서 그러하듯, 전광판을 쉬지 않고 흐르는 회사 이름과 주가지수, 귀청이 터져라 주가를 외쳐대는 셔츠 차림 사람들의 모습과 이리저리 휘날리는 종잇장. 단 몇 시간 동안 숨막히는 비트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그 현장에 '인간성'이라는게 있긴 하는걸까.


인간이기 위해선 일단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선 금이 필요한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도시는 마치 복싱 선수처럼 이리저리 잽 날리는 연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차있다.

그것은 때로는 넥타이를 맨 채 외치는 매도 가격처럼 더 갖기 위한 잽이기도 하고 때로는 철근같은 금융 권력앞에 자유와 권리를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한 잽이기도 하다.


해지고 거래 시장이 잠시 문을 닫으면,

살기 위한 치열함에 비어버린 '삶'의 공간 어딘가에서 종소리가 무심히 울린다.

어쩌면 위로, 어쩌면 애도일지도 모르는 그 소리.


그럼에도 계속해서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싶기도 하다.

치졸하고 더럽기도 하면서도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황소 뿔을 만져보고 멋쩍어 웃는 웃음이

조던 같은 이들의 기세등등한 웃음과 함께 공존하는 곳,


맨해튼의 월 스트리트가 아니고서야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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