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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 Mar 14. 2020

어디 이과 없나

문이과 농담에 대하여

내겐 

들을 때마다 불편한 이야기가

썩그리 많지 않다.

모두가 공감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문제임이 확실한 갖가지 차별들,

원치 않았음에도 겪어야만 했던 개인적인 아픔과 관련된 이야기 몇 가지.


이 정도쯤은,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불편한' 주제들일거라 짐작된다.


헌데 이중에 속하지 않는데도

매번 등장할 때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여기 문과 없어?
어디 이과 없나?

문과는 이래서 안돼.

누가 이과 아니랄까봐...

올 한 해가 밝고나서 채 겨울이 다 지나기 전,

나는 '무게중심 맞추어야하니 이과가 있었어야 했다'는 말을 두 번이나 들었다.

(공교롭게도 두 상황 다 물건을

지탱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오만 문제를 낳았다는

일제 교육제도의 또다른 자식,

 문이과 구분과 관련된

사람들의 발언은 크게 두 종류다.

첫째, 이 잘못된 교육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

둘째, 단순한 농담.

이를테면 문과다 망했으면,

이과 다 망했으면 같은 '밈'이나

문이과 출신의 차이를 짚어내는 우스갯소리.


이중 첫번째 경우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기도 하다. 아니, 그렇게 보다.

융합형 인재'니 '통섭'이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며, 수많은 학문과 그 분파들을 38선 그어버리듯

'문' or '이'로 거칠게 나눠버리는 교육 제도의 폐해는 잊을 만 하면 떠오르는 칼럼의 소재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회적 담론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제 교육이 어떻고, 융합과 학문의 경계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것이 문과이며 이것이 이과이노라' 하며

각각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심각히 토의하는 일상적 상황은

뭔가 부족할 때다.


'야 어디 이과 없어?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여기 문과 없나? 너희는

어떻게 그런 것도 몰라? "


기술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이과를 찾고, (그럴듯한) 상식이 딸린다 싶으면 문과를 찾는다.

문과가 있었다면 플라톤이 뭐라 했는지 알았을 것이며, 이과가 있었다면 맥스웰 방정식이 어디 써먹는건지

한큐에 알게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이과나 문과가 아니어서 자조하는 대사는 덤이다.


이런 것들, 사실 당연하다.

무언가 부족할 때 그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을 찾는건 당연하다.

전공이 전문지식 보유의 척도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


어찌보면 '전공'이란 마치 사는 곳과 같다. 서울 사람에게 부산 서면의 숨겨진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묻는건 쌩뚱맞다. 그러나 사는 곳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 전공도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물론 거주지는 중요하다. 융합형 인재가 되는 길이 겁먹을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래바닥에 그은 선 넘어가듯이 이 분야 저 분야 넘나드는게 간단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짚은 것은

 '일상생활'의 경우다.

사소하고, 가벼우며, 평범한 자리에서의 경우. 일하고, 사업하고, 정치할 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술자리 계산이 빠르게 안될 때에도 사람들은 이과 운운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 이과생인데 계산을 빠르게 못한다면? 드립 받기 딱 좋은 다)


진짜 별 것 아닌 일들에도 사람들은

서로의 전공을 입방아로 찧어댄다.

가끔 또는 자주, 사람들은 이마에 '무슨무슨 과'라고 써붙이고 다니기라도 하듯이 산다.

'학과별 많이 듣는 말' 따위의 제목을 단 SNS 게시물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나도 공감하면서 봤다. 내 전공, 정확히는 내가 듣는 말들이 지겨워서.  


글 잘 쓰는 이과도 많고, 기술 잘 다루는 문과도 많다. 이쪽 저쪽의 지식에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 수많은 분야의 '전공생'들이 있다. 수많은 문과와 이과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문이과 농담을 지적하는 이유는 비단 지식 보유의 여부 때문만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누가 모를까?


문이과 농담은 가끔씩 타인을 향한

무지의 베일이 된다.


계산? 글쓰기? 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며, 더 잘한다면 마땅히 칭찬받을 일들이다.

그러나 이따금 감성과 흥미의 영역을 건드릴 때,

문이과 구분은 여간 불편하지 않은게 아니다. 스킬(Skill)은 재능과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중 어떠어떠한 학문과 기술을 '전공'하였다는 것은 개인의 스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성과 흥미의 경우는 다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문이과 농담의 전제는, 이를테면 남자아이는 자동차를, 여자아이는 인형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처럼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과 (가 아닌 이과를 전공한) 사람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고 시나 소설을 즐기지 않으며 역사 상식은 전무한 것처럼 여기거나,

문과 (가 아닌 문과를 전공한) 사람

통계만 봐도 머리가 쭈뼛 서 별자리가 아닌 별의 탄생 과정에는 전연 관심도 없는 사람인 것마냥 대하는게


과연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일까?



어떤 자질은 능력이기 전에 '흥미'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감수성'과 '호기심'이다. 또는 각자가 타고난 바와 자라난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계발될 수 있는 '센스'의 문제이.

가끔씩 이런 지점을 무시하며 문과와 이과를 찾거나, 외면하려 할 때 그 농담은 말그대로 담談, 즉 발화나 말도 될 수 없는 가랑잎처럼 가볍기 짝이 없는 음성과 같아진다. 그 음성들이 개인과 사회의 운명을 크게 좌우하는 경우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지만, 누군가의 일면을 가볍게 무시할 가능성은 충분히 갖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문이과 농담은 적당히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이보다 훨씬 더 적어져야 한다.

아예 없으면 더 좋을 법도 하지만,

일말의 유머도 허용하지 말자는건 또다른 헛소리일테다. 그러니 그것이 우선 적어지기를 바란다고,

이 땅의 수많은 각양각색의  인재들에게

말씀 하나 올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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