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을 밟는 시기
서울은 넓다.
하지만 서울은 답답하다.
각종 심리테스트에서 '자유로움'을 지상 최고 가치로 여긴다고 나오는 나에게
서울은 결코 물리적으로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도시는 아니다.
그런데 작년 봄, 드디어 나름의 자유를 누릴 방법을 찾았다.
바로 따릉이.
서울시 공용자전거 따릉이가 출시된지 어언 5년만에 나는 압구정에서 따릉이를 처음 타봤다.
작년만 해도 아직 뉴따릉, 즉 QR코드를 쓰는 신형 자전거보다 구형 자전거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구형 따릉이의 첫인상은 썩그리 좋지 않았다.
우선 자전거에 붙은 전자패널이 마모된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 타다가도 패널에 다리를 부딪히는 경우가... 처음 이용하는 나로서는 패널에 이어져있는 연결장치를 어떻게 분리시켜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하여 인생 따릉이 첫 개시일, 나는 옆에서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끌고 가시는 한 어머니께 '저... 제가 처음 타봐서 그러는데요' 라며 초짜 티를 팍팍내며 연결장치 분리방법을 여쭤보아야만 했다.
내가 택한 첫 라이딩 장소는 한강공원이었다. 일과를 마친 곳과 가장 가까웠다는 이유 때문이었고, 잠원한강공원으로 가기 위해 압구정의 따릉이를 빌렸다. 때는 한겨울 들이닥친 코VID 바이러스 2차 대유행 전 잠깐의 여유가 생겨나던 무렵이었고, 나는 간만에 자유를 만끽하는 시민들 틈에 섞여들었다.
첫 페달을 밟고 야경이 빛나는 한강 자전거길로 나아갈 때의 그 쾌감이란..! 저만치 또다른 자전거 피플이 '아~ 시원하다~~' 외치며 지나갔다. 그 저녁 나는 잠수교를 넘어서 한남역까지 달렸고, 반납하는 시점에는 이미 따릉이에게 제대로 치여있었다.
그 이후 줄기차게 따릉이를 탔다. 한강은 물론이요 여의도공원, 올림픽공원, 서울숲 등등 공원을 정복해나갔고, 역으로 갈 때도 밤에 야식을 사러갈 때도 외국어시험을 보러 갈 때도 따릉이 타고 갈 궁리만 했다. 절대 걷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돋보이는 1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공원에서 자전거길을 쭉 따라 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 나는 급격히 속도를 줄이고 앞바퀴만 좌우로 움직였다. 가만히만 서 있으려니 자전거는 균형을 잃었다. 넘어지진 않았지만 그 찰나에 아주 초보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아 자꾸 페달을 밟아야만 얘가 서 있는구나'
그때야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당연히 멈춰서야 했지만, 가상의 텅 빈 길을 혼자 달리고 있다가 급히 속도를 늦추고 페달을 밟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지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자전거는 기운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마음 심란한 밤, 그 '상식'이 다시 불쑥 떠올랐다.
내 미래의 길과 장애물들을 놓고 혼자 머리로만 씨름하던 때였다. 나는 분명 지금 옳다고 생각하고 가고싶은 길을 가는 중인데, 어디선가 매캐한 연기냄새가 나고 잿가루가 시야를 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길을 가자니 역시나 불확실하고 조금씩 불만족스럽긴 똑같았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따릉이에 올라타는 상상을 했다. 두 손잡이를 잡고 계속 페달을 밟아나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여러 목표 혹은 욕심 중 하나만을 선택했다고 해도, 어쨌든 어딘가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페달을 밟고 있는거구나.
어디에 도착할진 몰라도, 계속 밟아야만 적어도 쓰러지지는 않겠구나.
그렇게 쓰러지지 않고서 꾸준히 달리다보면 또다른 이정표가 나올거고, 필요하다면 그곳에서 또다른 선택을 하면 되는거지.'
때로는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도 계속 움직여야만 할 때가 있다. 일단 나아가는 것이 멈추는 것보단 나을 때가 있다. 어차피 답은 누구도 모른다. 다만 책임은 나에게 있고, 따라서 내가 할 일은 나의 길을 스스로 발견해야한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발견을 위해서는 우선 나의 자전거를 계속 세워야겠지.
그리고 계속 서 있기 위해선
우선 페달을 밟아야 한다.
어쩌면 이 도시가 답답한 이유도 나의 불안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그런 내가 깨달은 그 사실 하나,
그것이 내게 따릉이가 선사한 진정한 자유이자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