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남이
씨남이는 성적으로, 그 뒤의 나는 역할로
이리저리 반을 지휘했다.
그날도 담임 선생님은 반장인 나만 이해 가능한
손짓을 하고 표정을 지으셨다.
반의 열기가 발화점에 닿기 전,
신고보다 먼저 출동하는 소방수는 늘 나였다.
“야, 담임쌤 금방 오셔, 조용히 좀 해”
“옆반 선생님 오신다!”
소리치면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다시 웅성거렸다.
나는 이리저리 물을 날라,
불씨가 보이는 자리마다 들이부었다.
씨남이는 불구경이 즐거운 구경꾼처럼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키며
나와 창밖을 번갈아 쳐다봤다.
“고생했어~”
꺼진 불을 뒤로하고 녹초가 되어 앉을 때면
씨남이는 돌아앉아 짧은 몇 마디로 나를 위로했다.
교실엔 덩치 큰 초등학생들만 가득했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고3이었다.
혈기와 땀냄새가 뒤섞인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원기옥이 되어
금방이라도 교실을 터뜨릴 듯 팽팽히 부풀어 있었다.
어른들은 지금이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했다.
각자의 19살 챕터를 펼쳐
성취와 고충의 문단을 짚어가며
수능이라는 시험의 파괴력을 암시하느라 바빴다.
씨남이는 그런 어른 같았다.
몇 번쯤 살아 본 사람처럼
묵묵히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야, 교과서가 왜 이렇게 깨끗해? 문제집은? 없어?“
”응, 그냥 책 읽으면 되지 뭐“
씨남이 책엔 밑줄 하나 없었다.
시리즈 문제집도, 화려한 필기구도 없이
그저 수업을 듣고 교과서를 읽어 내려갔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어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천재들의 인터뷰는 늘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내 책상 서랍엔
도전심을 자극하는 문제집이 산처럼 쌓여 갔고,
교과서는 형광펜과 낙서로 까맣게 물들었다.
용하다는 선생님을 찾아 학원 여러 곳을
전전하던 나와 달리,
씨남이는 뻔뻔스럽게 공부를 잘했다.
뻔뻔한데 밉지 않은 사람을 처음 본 걸까.
그런 씨남이를 한참 바라봤다.
교과서 색깔만큼이나 달랐던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