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ff

씨남이

by 연쇄상담마

16~17세기 유럽 귀족들이 입던 주름진 목깃. 러프.


“야, 목이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

“아, 그냥 입는 거지 뭐.”

“크크, 다른 거 입어라 좀.”

“어차피 체육시간 입고 마는 건데.”


씨남이의 체육복 상의엔 러프가 있었다.

얼마 전 출전한 3on3 농구대회 참가 티셔츠라고 했다.

여러 번 빨고 말려 100% 면은 그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씨남이는 그 티셔츠를 좋아했다.

지나간 사랑의 흔적처럼,

추억을 놓지 못하는 바보처럼

입고 벗고, 또 입고 벗었다.

그렇게 자글자글한 주름이 자리 잡았다.


늘어난 반팔 티셔츠엔

지난 시간만큼 늘어진 애정이 묻어 있었다.


철부지 반장은 그게 재밌다고 놀려댔다.

자글자글한 주름 자국을 칠판에 그리느라

짤막한 분필들이 남아나질 않았다.

티셔츠인지 씨남이인지,

뭐가 재밌는 지도 모르고 농담을 쏟아냈다.


덩치 큰 어린아이들은 건강박수를 쳤다.

박수와 깔깔거리는 소리가 교실 안을 채웠다.


씨남이도 허허 웃었다.

다른 사람 얘기마냥 크게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 즈음,

씨남이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분필을 빼앗아

주름을 더 그려 넣었다.

끊어질듯한 웃음 선은 그렇게 이어졌다.

씨남이도 웃고, 나도 웃고, 교실도 웃었다.

어른이 아이를 바라보며 웃는 줄도 모르고 웃었다.


씨남이 티셔츠의 주름 사이엔

왜 그런지 모를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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