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은 신탁을 설정하는 자(위탁자)와 신탁을 인수하는 자(수탁자) 간의 신임관계에 기하여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의 재산을 이전하거나 담보권의 설정 또는 그 밖의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일정한 자(수익자)의 이익 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의 관리, 처분, 운용, 개발, 그 밖에 신탁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행위를 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합니다(신탁법 제2조).
신탁재산이 부동산인 신탁을 부동산 신탁이라고 하는데, 부동산 신탁은 부동산소유자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부동산신탁회사에게 신탁등기하는 방식으로 소유권을 이전하면, 신탁회사가 수탁받은 부동산을 신탁의 목적에 맞게 관리․개발․처분하는 법률관계를 의미합니다.
현재 실무에서 주로 취급되는 부동산 신탁의 유형은 관리신탁, 처분신탁, 담보신탁, 토지신탁(개발신탁), 분양관리신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각 신탁의 유형 및 계약관계에 따라 신탁회사가 수행하는 업무의 범위도 상이합니다.
부동산 신탁업무는 주로 부동산신탁회사가 영위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신탁업무 중 토지신탁은 부동산신탁회사만 취급할 수 있으며, 담보신탁은 부동산신탁회사 및 은행만 취급이 가능합니다.
현행 세법은 기본적으로 신탁재산에 대한 사법상의 소유권은 수탁자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신탁재산에서 생기는 소득 및 신탁거래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를 실제로 누리거나 누릴 자는 수익자 내지 위탁자라는 신탁도관이론에 기초하여,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에 대한 납세의무자를 위탁자 내지 수익자로 정하고 있습니다.
신탁도관이론((the trust conduit theory)이란, 신탁을 단순한 도관(conduit)으로 보기 때문에, 신탁재산 자체를 별도의 독립된 과세단위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이론입니다. 신탁재산의 소유권이 대외적으로는 수탁자에게 이전되지만, 이와 같은 신탁재산은 위탁자 또는 수익자의 이익을 위하여 운용되는 것이므로, 위탁자 또는 수익자를 납세의무자로 보는 것이 국세기본법 제14조, 법인세법 제4조의 실질과세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에, 신탁도관이론에 따르면 신탁재산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한 세법상 납세의무자는 위탁자 내지는 수익자가 됩니다.
구체적으로 법인세법 제5조 제1항, 소득세법 제2조의2 제6항은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은 그 ‘신탁의 이익을 받을 수익자(수익자가 특정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을 경우 신탁의 위탁자 또는 그 상속인)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규정하여, 신탁은 도관에 불과할 뿐 독립한 과세단위가 아니라는 수익자 과세원칙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법인세법 제5조 제2항은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는 신탁회사가 수탁한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수입과 지출은 그 법인에 귀속되는 수입과 지출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신탁재산에서 발생한 소득은 수탁자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의 투자로 이루어지는 투자신탁 등의 경우에는 신탁을 투시하여 신탁재산의 투자수익을 바로 수익자에게 과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이 발생한 시점에 수탁자에 대해 과세하지 않고, 위와 같은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이 수익자에게 분배되는 시점에 이를 배당소득으로 과세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소득세법 제17조 제1항 제5호, 소득세법 시행령 제46조 제7호). 이로 인하여 신탁재산에 귀속되는 소득은 사실상 과세이연의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한편 지방세법상 취득세․재산세의 납세의무자는 과세대상물건의 소유권을 사실상 취득하여 소유하고 있는 자이므로, 신탁법에 따른 신탁으로 수탁자에게 소유권이 이전된 토지에 대한 취득세 및 재산세의 납세의무자는 원칙적으로 수탁자이며, 대법원은 토지의 지목변경이 이루어질 경우에도 그 지목변경행위를 누가 하였는지에 관계없이 그 취득세의 납세의무자는 수탁자라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두2395 판결).
다만, 지방세법은 신탁으로 인한 신탁재산의 취득으로서 ① 위탁자로부터 수탁자에게 신탁재산을 이전하는 경우, ② 신탁의 종료로 인하여 수탁자로부터 위탁자에게 신탁재산을 이전하는 경우, ③ 수탁자가 변경되어 신수탁자에게 신탁재산을 이전하는 경우는 형식적인 소유권의 이전으로 보아 취득세를 비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지방세법 제9조 제3항), 간주취득세의 과세대상이 되는 과점주주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신탁재산이 실질적으로 위탁자에게 귀속된다는 입장에서 위탁자가 신탁한 신탁재산은 위탁자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보아 과점주주 해당 여부를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지방세법 제7조 제5항).
부가가치세법은 신탁재산의 공급을 과세대상 거래로 볼 것인지, 납세의무자는 누가될 것인지 등에 관하여 아무런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부가가치세법은 주식이나 채권 거래를 과세대상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으므로, 신탁재산이 주식이나 채권인 투자신탁, 금전신탁의 경우에는 부가가치세 관련 쟁점이 상대적으로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반면, 신탁재산이 토지를 제외한 부동산인 경우, 부동산 거래는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되는 재화의 공급으로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므로, 신탁과 관련한 부가가치세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한편 부가가치세법상 과세의 대상인 재화의 ‘공급'은 계약상 또는 법률상의 모든 원인에 따라 재화를 인도하거나 양도하는 것을 의미하며(부가가치세법 제9조 제1항), 이와 같은 ‘인도 내지 양도'는 거래 상대방이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도록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를 전제로 합니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5두2926 판결). 이에 기초하여 보면, 부동산 신탁의 경우, 부동산의 사용․수익권 내지 소유권의 이전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 신탁의 설정 및 운용, 신탁재산의 임대 및 처분, 신탁계약의 종료 등 각 거래단계별로 부가가치세 과세여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부동산 신탁에 있어서 부가가치세 과세 여부가 문제될 수 있는경우로는, ① 신탁의 설정(신탁계약)에 의한 위탁자에서 수탁자로의 신탁재산의 이전 및 신탁의 종료에 따른 신탁재산의 위탁자 또는 수익자로의 귀속, ② 위탁자가 타인을 수익자로 지정하거나 위탁자 또는 수익자가 제3자에게 수익권을 양도한 경우, ③ 신탁재산을 취득하거나 신탁재산을 처분, 임대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세법상 신탁재산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여부에 따라 위 각 경우 별로 부가가치세 과세여부 및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 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실관계
원고(위탁자)는 건물의 매수를 위하여 저축은행으로부터 42억 원을 대출받고, 대출금 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위 건물에 대하여 부동산 신탁회사와 사이에 우선수익자를 저축은행으로 정하여 부동산 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신탁부동산이 환가되는 경우 저축은행의 채권을 우선적으로 변제하고 잔액은 원고에게 지급하기로 약정하였고, 신탁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 후 원고가 대출금채무를 변제하지 못하여 저축은행은 신탁회사에게 위 부동산의 환가를 요청하였으나 공개매각이 수차례 유찰되었고, 이에 저축은행이 수의계약으로 신탁부동산인 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다.
피고는 위탁자인 원고가 양수인인 저축은행에게 위 건물을 공급함에 따라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가 발생하였다고 보아 원고에게 부가가치세를 부과하였다.
2) 판례의 요지
① 부가가치세법은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라는 거래 그 자체를 과세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 소득이나 부가가치를 직접적인 과세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으므로, 납세의무자에 해당하는지 여부 역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라는 거래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② 재화의 공급으로서의 인도 또는 양도는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도록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를 전제로 하므로, 재화를 공급하는 자는 부가가치세법에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한 계약상 또는 법률상의 원인에 의하여 그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이전하는 행위를 한 자를 의미한다.
③ 수탁자가 위탁자로부터 이전받은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면서 재화를 공급하는 경우 수탁자 자신이 신탁재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의 귀속주체로서 계약당사자가 되어 신탁업무를 처리한 것이므로, 이때의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재화의 공급이라는 거래행위를 통하여 그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거래상대방에게 이전한 수탁자로 보아야 한다.
④ 세금계산서 발급․교부 등을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다단계 거래세인 부가가치세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신탁재산 처분에 따른 공급의 주체 및 납세의무자를 수탁자로 보아야 거래당사자를 쉽게 인식할 수 있고, 과세의 계기나 공급가액의 산정 등에서도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
나. 대법원 2017. 6. 15. 선고 2014두13393 판결
1) 사실관계
원고(위탁자)는 분양보증회사와 사이에, 신축중인 주상복합아파트 및 그 부지를 신탁부동산으로 하고, 원고가 보증사고로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될 때에 분양보증회사가 분양보증을 이행하기 위하여 신탁부동산을 관리․분양 및 처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분양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아울러 위 분양보증회사와 사이에 원고가 보증사고로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될 때에는 주택보증회사가 보증채권자에 대한 분양보증을 이행하기로 하는 주택분양보증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시공사의 부도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됨으로써 원고가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된 보증사고가 발생하자, 분양보증회사는 분양계약자들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환급한 후 원고에게 보증채무이행금액 및 지연손해금의 상환을 청구하였다.
피고는, 대한주택보증이 분양계약자들에게 환급책임의 이행을 완료하고 원고에게 보증채무이행금 상환청구를 함으로써 신축중인 주상복합아파트의 실질적 통제권이 원고로부터 대한주택보증에게로 이전되었고, 이는 부가가치세법상의 재화의 공급에 해당한다고 보아 원고에게 부가가치세를 부과하였다.
2) 판례의 요지
대법원은, 대상 판결의 판시내용을 원용하면서, 주택분양보증을 위하여 위탁자인 사업주체가 수익자 겸 수탁자인 분양보증회사에게 주택분양신탁계약을 원인으로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주택분양신탁의 경우 분양보증회사는 사업주체로부터 신탁계약에 따라 신탁재산의 소유권을 이전받고 이를 전제로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면서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므로, 분양보증회사가 주택분양보증계약에 기초하여 분양계약자들에게 분양대금을 환급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신탁재산의 이전과 구별되는 별도의 재화의 공급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수탁자의 지위에서 신탁재산을 처분할 때 비로소 재화를 사용․소비할 수 있는 권한을 거래상대방에게 이전하는 재화의 공급이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분양보증회사가 분양보증계약에 따라 분양대금을 환급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원고로부터 대한주택보증에게로의 재화의 공급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다. 대법원 2017. 6. 15. 선고 2014두6111 판결
1) 사실관계
시행사인 원고(위탁자)는 건설회사와 사이에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위한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고, 건설회사는 위 도급계약에 따른 신축공사를 마쳤으나 원고(위탁자)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원고는 신탁회사(수탁자)와 위 주상복합건물 중 미분양부동산에 관하여 부동산 처분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위 건설회사를 우선수익자로 지정하였다.
한편 원고와 건설회사는 위 부동산처분신탁계약을 통하여 원고의 건설회사에 대한 공사대금 채무가 모두 변제되는 것으로 약정하였다.
피고는, 부동산 처분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건설회사를 우선수익자로 지정한 것을 부가가치세법상 재화의 공급으로 보아, 미분양부동산(주택+상가)중상가분의 분양예정가액(시가) 중에서 건물가액을 과세표준으로 하여 원고에게 부가가치세 부과처분을 하였다.
2) 판례의 요지
대법원은, 수탁자는 위탁자로부터 재산권을 이전받고 이를 전제로 신탁재산을 관리․처분하면서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므로, 채무자인 위탁자가 기존 채무의 이행에 갈음하여 수탁자에게 재산을 신탁하면서 채권자를 수익자로 지정하였더라도, 그러한 수익권은 신탁계약에 의하여 원시적으로 채권자에게 귀속되는 것이어서, 이와 같은 수익자의 지정으로 인하여 당초 신탁재산의 이전과 구별되는 위탁자의 수익자에 대한 별도의 재화의 공급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경우 위탁자인 원고가 신탁계약을 통하여 미지급 공사대금 채무에 갈음하기로 하면서 신탁회사에게 상가 등을 이전하고 건설회사를 우선수익자로 지정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신탁설정에 따른 거래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와 달리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라. 대법원 2017. 11. 14. 선고 2014두47099 판결
대법원은, 위탁자가 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수급인인 채권자를 우선수익자로 지정하고, 이와 같은 우선수익자의 지정을 재화의 공급으로 보아 부가가치세 수정신고를 하였으나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아니하자 과세관청이 신고불성실가산세 등을 재계산하여 그 수정신고에 따른 부가가치세를 납부할 것을 경정․고지한 사안에서 위 대법원 2014두6111 판결을 원용하면서, 신탁계약에 따른 우선수익권은 원시적으로 수익자에게 귀속될 뿐이고 신탁설정에 따른 거래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위탁자와 우선수익자 사이에 부가가치세 과세원인이 되는 재화의 공급 자체를 상정할 수 없으므로, 그 수정신고의 내용은 과세대상이 되는 법률관계나 사실관계가 전혀 없어 납세의무 자체가 성립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대한 것으로서 그 하자가 중대할 뿐 아니라 명백하다는 이유로, 위 수정신고 및 그에 따른 처분은 무효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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