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대회 날 아침이 밝았다. 물품 보관소에 짐을 맡길 수 있는 시간인 7시 30분 전에 도착을 목표로 넉넉한 시간에 집에서 나섰다. 일요일 새벽의 대중교통은 고요했다. 시청역으로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1호선 열차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입고 있는 대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몇몇 보았다. 저분들도 다 서울광장으로 가는 사람들일까? 지하철이 시청역에 도착하자 더 많은, 같은 복장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집결지까지는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그분들을 따라가면 되었다. 가는 길에 밖까지 줄이 길게 서있는 지하철 화장실을 지나쳤다. 벌써부터 엄청난 대회장에 인파가 예상되었다.
지하철역 출구를 나와 집결지인 서울광장에 도착하니 이미 엄청 북적북적했다. 곳곳에서는 러닝크루로 보이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풀고 있었다. 물품 보관소에 짐을 맡기기 전에 같이 참가하는 팀원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다. 핸드폰은 이 대회에서 연락 용도의 소임을 다했으므로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 물품 보관소에 핸드폰까지 맡겨버렸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출발지인 청계광장 쪽으로 이동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일요일 아침부터 행사 음악을 크게 틀고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도로 한쪽을 전부 다 막고 있으니 반대편 도로의 버스 기사와 승객이 이쪽을 계속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게, 이 풍경이 진귀한 구경거리이긴 하다. 나도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으면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 일지 계속 관찰할 것이다. 내빈 소개 등 간단하게 행사를 진행하고 유의할 점을 안내방송으로 말해주길 이 대회는 배번호에 붙어 있는 기록칩으로 출발선 매트와 도착선 매트를 밟은 시간의 차이로 기록을 측정하니 옆사람을 이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통제 시간 준수와 마지막으로 무사 완주를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마라톤이 꽤나 최첨단이다. 이 배번호가 내 기록을 책임지고 있다니 말이다. 그 후로 나는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걱정만이 맴돌아 다른 안내 방송은 귀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하프 부문이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11km 부문이 출발했다. 나보다 빠른 팀원은 나를 앞질러 갔다. 이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