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1km FINISHER
도착 지점에 도착하니 ‘완주 메달, 기념품 수령’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완주 메달과 간식이라고? 바로 받아서 완주 메달을 꺼내니 ‘11km FINISHER’라고 적혀있었다. 와 내가 완주자라니. 도착 지점에서는 다들 메달을 걸고 다니지만 거의 걸어서 완주한 나는 부끄러워서 메달을 확인하고 슬며시 다시 넣었다. 그다음으로 물품보관소에서 물품을 찾고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에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록조회 안내’. 기록칩 측정 결과가 이렇게 바로 올 줄 몰랐다. 참으로 최첨단 시스템이다. 떨린 마음으로 내 이름을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니 화면에 적힌 기록은 1시간 25분 31초. 정말 기뻐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3분의 2를 걸었지만 제한 시간 안에 당당히 들어왔다!! 나는 학창 시절 체력장 오래 달리기에서 항상 뒷주자였고 운동장 한 바퀴조차 뛰어서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이런 내가 11km를 제한 시간 안에 완주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같이 참가한 팀원들을 만나고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집에 기쁜 마음으로 점심 즈음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내가 이렇게 완주메달을 가져온 것에 대해 매우 놀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중간에 쓰러질까 봐 걱정을 하셨단다. 평소에 연습하는 모습을 거의 못 보셨으니 충분히 하실 수 있는 걱정이었다. 결국 나는 대회 중간에는 쓰러지지 않았으나 그 후에 심한 감기에 걸려 고생을 했다. 막판에 반포기 상태로 연습을 거의 안 했고 갑자기 무리를 하니 얻은 후유증였다.
명색이 서울‘달리기’ 대회였으나 거의 대부분을 걸어서 완주한 것은 아쉬웠다. 트레드밀에서는 30분 연속 뛰기에 성공했으니 4~5km 정도는 한 번에 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밖에서 연습을 해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내 페이스를 확인할 수 없었던 점도 아쉬웠다. 대회에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워치를 차고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운동은 역시 장비빨이다. 기록칩만 봐도 기술의 발전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복장. 시험 당일에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안 입던 옷을 입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다. 알고 보니 그 바지는 고무줄이 끊어져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복장 때문에 제대로 뛸 수가 없었다는 건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뭔가 보완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11km를 완주했다는 뿌듯함, 아쉬움과 함께 얻은 연이은 감기 몸살로 운동을 몇 개월 쉬니 이제 몸이 근질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기억은 저 멀리 치워두고(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새로운 마라톤 대회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