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계절입니다. 사과 궤짝을 아시는지요?

회초리의 대용이었지요.

by 글터지기

퇴근길,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는데,

허리가 굽은 할머니와 중년 여인이

대화를 하며 앞을 지나갑니다.


딸로 보이는 중년 여인은

허리가 굽은 어머니께

농사는 더 이상 지으시지 말라고,

건강이 더 안 좋아지면 아버지도 힘들고,

집도 엉망이 되는 거라며 어머니를 설득합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나도 비슷한 잔소리를 했을까.


아버지와 이혼하고 소식 없이 지내던 어머니는

아들놈에게 췌장암을 끝내 숨기시고

어느 날 갑자기 곁을 떠나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시집을 와서 장사하며

시동생들을 시집 장가보내고,

고생은 다 하다가 다른 사람이 생겼다지요.


겨울은 사과의 계절인가요?

사과 상자에 담긴, 부사, 국광이 흔하지 않던 시절.


채소와 과일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

말을 어지간히 듣지 않던 아들놈은

생활 곳곳에서 혼날 짓을 많이 했었나 봅니다.


사과 상자,

아니 사과 궤짝.

나무 판이 얼기설기 엮여 있던 그 사과 궤짝은

쉽게도 부러지고 뜯어졌습니다.


버스 정류소 앞에 서있다가

냉큼 얻어 타고 버스 종점까지 타고 가서

어딘지 몰라 하염없이 울던 아이.


장손이 없어졌다며 사방팔방 찾아 헤매셨을

큰 고모, 작은 고모, 큰삼촌, 작은 삼촌...


작은 고모 등에 업혀 울다 지쳐

집에 오면 늘 사과 궤짝 뜯어진 판으로

종아리든 어디든 많이도 맞았습니다.


동생과 다투던 어느 날,

그 추운 겨울에 창문은 깨져있고,

밖에서 걸어 잠근 부엌에서

아궁이와 쌀독을 끌어안고 잠든 아이들.


아궁이는 내 차지,

쌀독은 동생 차지였습니다.

그때도 사과 궤짝으로 혼이 났었지요.


제게 어머니 기억은 사과 궤짝이었습니다.


이혼을 하신 이후에는 소식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해 살고 있는

전방 산골짜기 관사에 찾아오셨지요.


그날 여쭤 봤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저희를 혼내셨어요?"


"왜 그리 화가 났나 모르겠다.

아마 너무 젊어서 철이 없었나 보다..."


이 말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 나이가 돼서 생각해 보니

그 젊은 나이에 시집살이를 비롯해서

먹고살기 위해 시장통에서 양파를 파시던

그때가 서른 즈음이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적이 없습니다.


갑자기 곁을 떠난 걸 원망했고,

자식들 다 시집 장가가서 살만 한 걸

기다리시지도, 보지도 않고 떠난 어머니입니다.


제 아이들이 다 커서야 알겠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의 분노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과 싸우던 젊은 여자의 울음이었을 겁니다.


사과 궤짝이 부서질 때마다

그 마음도 무너졌을 겁니다.


곱게 익은 사과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켜켜이 쌓여 있던 사과 궤짝들이 생각납니다.


이제 원망을 내려놓는다고 몇 번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어머니가 생각나는 걸까요.


원망할 때는 몰랐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저보다 한참 어린 나이라는 걸.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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