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놈보다 '손녀'가 더 어른스럽습니다.

우리 집 저승사자가 딸아이입니다.

by 글터지기

지난 일요일, '우리 집 저승사자'(딸)가

민생지원금 사용 문제로 집에 왔습니다.

장장 다섯 시간에 걸쳐 쇼핑을 하고

지원금에 얹어 돈을 더 들였다고 글을 썼습니다.


중학교 담임으로 직장 첫 해를 보내고 있는

'선생'으로서의 애환을 담담하게 이야기했고,

사랑스러운 학생들에 대해 즐겁게 말했습니다.


쇼핑을 할 때 따라다녀 본 적도 없고,

옷을 사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구매할 것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피곤하기도 해서 저승사자의 짐만 된 게 아닌가.


쇼핑이 거의 끝나갈 즈음,

저승사자가 꺼낸 이야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할아버지 모시고 캐나다 고모한테

한 번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할아버지 건강 문제도 있으니까

13시간 정도 비행을 해야 하는데

프리미엄 좌석이라는 게 있기도 하대요.

비행기 왕복 비용이 한 사람당

250만 원 정도 하는 것 같고요.

제 건 제가 준비할 테니,

할아버지 건 아빠가 준비해 주세요."


겨울 방학이 가장 기니까 열흘 정도 시간을 내서

자신이 할아버지 모시고, 이민 가 있는 고모 집에

한 번은 다녀와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는 얘기.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 수준이신 흰머리 소년의

컨디션이 가장 큰 걸림 돌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말로만 효녀'(동생)에게 전화해

의견을 물어보고 대략 내년 1월 말에서

2월 중순 사이에 시간을 맞춰 보기로 했습니다.


"할아버지께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는 걸로 해요.

괜히 간다고 했다가 못 가는 일이 생기면,

서운해서 어떡하겠어요."


수 년동안 '말로만 효녀'가 아버지 좀

비즈니스석으로 모셔간다고 한 걸

한결 같이 반대해 온 저였습니다.


흰머리 소년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도 그렇고,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상 문제가 생기면 조치할 수 없다는 게

그럴듯한 제 핑계였습니다.


"이왕이면 한 해라도 빨리 다녀와야

할아버지한테 제일 좋을 거 같아요."


"그래, 고모하고 구체적으로 논의해 볼게"


지금이 11월 중순이니까

내년 2월까지 4개월 정도의

단기 프로젝트가 하나 생겼습니다.


일정이 확정되고 구체화되면

흰머리 소년께도 말씀드리고 건강문제로

운동이나 챙겨야 할 약품들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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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딸을 키워야 한다고 하는구나..

아들놈보다 나은 손녀입니다.


모처럼 '말로만 효녀'(동생)과 통화하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전하니

반색하며 반기는 게 역시 '딸'이 낫구나...


아들 둘을 키우면 부모가 길바닥에서,

아들 하나는 요양원에서,

딸 하나를 키우면 부뚜막에서,

딸 둘을 키우면 비행기 안에서

사망한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의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이제는 아빠보다 더 어른스럽습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울컥한 날이었습니다.


"딸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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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이 글을 읽고 있을 '말로만 효녀'야.

조카들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에게

일정이 정확하게 정해지기 전까지

'할아버지께 절대 이야기 하지 말라'라고 당부해라.


조금이라도 낌새를 눈치채시면

행여 계획이 틀어지면 서운해서 힘들어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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