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데려 가고, 새싹을 가져다 놓는 존재.
하느님이 모든 아이를 돌보아 줄 수 없으니
대신 보낸 천사가 '엄마'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좋겠습니다.
돌보아줄 천사가 곁에 있는 셈이니까요.
물론 천사답지 않은 어른들도 많습니다.
굳이 사례 하나하나를 꺼낼 것 없이도
대부분은 좋은 천사라는 걸 모두가 압니다.
한동안 어두운 동굴에 처박혀 살고 있을 때는
왜 어른들을 돌봐줄 천사는 보내지 않았을까?
원망하기도 하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아이들 둘 딸린 홀아비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평소 친절하게 대하던 사람들도
어느 날 홀아비라는 걸 알게 되면
소위 '껄떡거린다'는 시선이 존재했습니다.
일하다가 화장실 변기 막혔다는 소리에
집에 들러 해결해야 하는 건 작은 일이고,
누가 갑자기 아프면 보호자가 동행해야 했습니다.
쓸쓸한 보호자로 산다는 건
사소한 어려움과 함께 사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독립했고,
흰머리 소년도 건강을 유지 중이니까
마음 편안하게 저만 생각하는 호사를 누립니다.
시간이란 참 묘한 존재입니다.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도 하고,
새싹이 어느 날 갑자기 돋아나기도 하고,
뛸 듯 행복했던 시간도 결국 지나갑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데리고 왔다가
모든 것을 또 다른 어딘가로 가져다 놓습니다.
상처가 아무는 자리, 숨이 쉬어지는 자리,
다시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돋아나는 자리로
모든 걸 돌려놓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보낸 천사가 '엄마'라면
어른을 위해 보낸 천사가 '시간'은 아닌가?
우리 모두는 천사와 손을 잡고 가는 길입니다.
때로 시련이 있다는 건,
천사가 손을 놓은 것이 아니라
다른 자리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는 게 아닐까.
가수 정성호의 노래를 듣습니다.
'당신은 천사와 커피를 마셔 본 적이 있습니까."
노래가 마음에 확 와닿은 새벽.
내게도 천사가 있다면 '시간'이었습니다.
모두의 천사가 '시간'인 것처럼.
모두, 천사와 함께하는 주말 보내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FXfyvQl2bD0&list=RDU1-wQt-4Wrc&index=2
*에필로그
새벽 30분 글쓰기를 하는데
서두를 쓰다가 머리가 정리되지 않고
출근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어설픈 마무리로 발행하고 나갈까 하는
간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둘러 발행하지 않고 이제 정리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천사와 잠시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