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을 갑니다.
같은 직종에서 이직할 때 가장 위험한 생각은
'다 그렇게 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중소도시 슈퍼마켓과 동네 매장에서 만난
많은 분들은 유통업 특성상 이직을 자주 합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A, B 매장이 있다고 하면,
매출이 떨어진 A매장은 인력을 감축하고,
그 과정에서 A매장 점장이
B매장으로 옮겨가는 식입니다.
그런데 묘한 점은, A매장에서 근무하던 담당자가
B매장으로 옮겨가면 매출이 좋던 B매장조차
점점 A매장을 닮아 간다는 사실입니다.
전략도, 운영 방식도, 직원들의 분위기도
조금씩 A매장의 색깔을 닮아갑니다.
결국 지역의 여러 매장이
서로 비슷비슷한 전략을 반복하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7년 동안 납품 업무를 하며 만난 분들은
이직할 때마다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전에 근무하던 곳은 가망이 없어."
"거기서는 다 그렇게 해."
그러니 동네 마트들의 분위기가
왜 이렇게 비슷한지 어느 정도는 설명이 됩니다.
속으로는 말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며칠 전, 젊고 성실한 직원이
이직을 한다고 대화가 오갔습니다.
30대의 젊은 나이이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분이라
넌지시 다른 일도 한 번 해봐도 좋겠다고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그랬던 것처럼 닮았습니다.
"해 오던 일이 이것뿐이라..."
그 말을 듣는데 뭔가 더 이야기를 하면
꼰대 되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저 어딜 가든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결혼도 해야 하고,
결혼하려면 돈도 벌어야 하니,
당장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해오던 일을 해야 한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그 직원은
양심상 경쟁 매장으로 갈 수 없다며,
다른 지역의 다른 매장으로 스카우트되어 갔습니다.
이 직원이 떠난 자리에는
다른 매장에서 근무하던 직원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매장도 다른 매장과 분위기가 비슷해졌지요.
내 자리도 언제든
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도 언젠가는 더 젊고 더 빠르고,
더 현명한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담담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 자리를 떠나더라도
유통업에 다시 종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더 잘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일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저는 나 자신을 위해서는 글을 씁니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어떤 자리에 서 있든,
제가 끝까지 붙잡고 싶은 건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사는 일 한 가지뿐입니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말에 현혹되지 않겠습니다.
저도 저의 길을 갑니다. 나만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