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는 '장거리 곁지기'가 있습니다.
40대 후반에 서울에서 배드민턴 운동을 하다가
만나게 된 마음을 나눈 친구가 있습니다.
'장거리 곁지기'라는 닉네임을 붙여줬습니다.
오랜 군 생활을 뒤로하고,
일면식도 없는 서울에 와서 조그만 회사에
적을 두고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취미로 즐기던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였습니다.
저녁 운동은 '치킨이 맛있을 정도까지만'이라는
말을 신조처럼 여기고 운동을 마치면
치맥을 함께 나눈 친구.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생각나는 친구.
인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마치 부랄친구처럼 상상하지 못할 지원과
도움이 다가왔습니다.
그때마다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너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뭘 믿고 날 이렇게 도와주는 거야?"
"응. 내가 좀 미쳤나 봐" 하며 웃습니다.
작년 이맘때 김치를 담근 걸
한 통인가 만나서 전해준 일이 있습니다.
일 년에 세네 번 얼굴을 보는 사이니까
지난 10월에 빈 김치통을 받아왔지요.
친구는 잘 먹었다며 어깨에 메는 가방에
김치통을 넣고 제 차 트렁크에 실어 주었습니다.
주말에 '마음지기' 집에서 김장을 하는 날이라
친구에게 전해줄 김치까지 챙겨야겠다고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냈습니다.
그 큰 가방 안에는
'제주 도시락 김'이 한가득 차 있었습니다.
거의 세 달 만에 개봉하는 선물이지요.
가방에 빈 김치통만 있다던 친구 녀석 덕분에
차 트렁크에서 잠자던 밑반찬이 생긴 셈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않던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모처럼 카톡으로 '고맙다'는 소식을 남겼습니다.
'그냥 김인데 뭐'하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2025년을 마음고생으로 채우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일 친구에게
저는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주 얼굴을 보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신세를 잔뜩 지고 오는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2주 후에는 친구가 제가 있는 곳으로
얼굴 보러 오겠다고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여전히 친구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옆에 가만히 앉아 있어 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친구는 참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줬습니다.
그 마음이 고맙고, 또 미안하고,
그래서 더 따뜻합니다.
올해 참 힘든 시간을 보낸 친구가
잠시라도 제 자리에서 쉬어갔다 가면 좋겠습니다.
길 위에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장 김치 한 통을 담아놓고 2주 후가 기다려집니다.
"친구야! 네 덕분에 살아 볼만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