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12월 21일,
통리기무아(統理機務衙門)은
조선말 개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설치된 정1품아문 관청으로 출발합니다.
전통적인 육조 체제의 한계를 넘어
군사, 외교, 재정 등 개화 정책을 총괄하고
체계적으로 담당하려는 중앙 개혁 기구였습니다.
기존 행정 체계로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근대 문물의 유입을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조정은 외교 교섭, 군제 개편, 재정 정비를
한 곳에서 조율할 수 있는 상설 기구가 필요했습니다.
개화 정책의 근대적 '컨트롤 타워'를 지향했고,
외교는 조약 체결과 통상 문제,
군사는 별기군을 설치하여 근대화하고
재정과 행정은 사절단을 파견하여
근대 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 조정을 시도합니다.
고종 재위시절 이루어져
개화파 관료들이 실무를 주도했습니다.
통리기무아문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해체되는 등 존속 기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전통 질서에서 근대로 이동하려 했던
제도적 실험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는 분명합니다.
이후 내무아문·외무아문 등
근대 행정 기구로의 분화는 이 경험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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