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독립선언
919년 2월 8일, 한국 유학생들은
일본 도쿄에서 2·8 독립선언서를 발표합니다.
이 선언은 해외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공식적인 독립선언이자,
한 달 뒤 벌어질 3·1 운동의 불씨가 됐습니다.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조선 청년들은 도쿄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자주독립국임을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선언문에는 조선 민족이
역사와 문화를 가진 주체적 민족이며,
무력이나 폭력이 아닌
정의와 자유의 원칙에 따라
독립을 요구한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가두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곧바로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구금되었습니다.
그 소식은 국내외로 빠르게 전해졌고,
국내의 종교계·지식인·학생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 흐름은 3월 1일,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2·8 독립선언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총과 칼이 아닌 말과 선언으로 시작된 독립운동,
그리고 해외의 청년들이 먼저
민족의 운명을 외쳤다는 점에서,
이 선언은 3·1 운동의 사상적·시간적 출발선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2·8 독립선언'
* 에필로그 : 28독립선언서 전문, 나무위키 '2·8 독립선언'
1. 본단은 일한 합병이 오족의 자유 의사에 출치 아니하고 오족의 생존 발전을 위협하고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2. 본단은 일본 의회 및 정부에 조선 민족 대회를 소집하여 대회의 결의로 오족의 운명을 결할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함.
3. 본단은 만국 평화 회의에 민족 자결주의를 오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우 목적을 전달하기 위하여 일본에 주재한 각국 대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해 정부에 전달하기를 요구하고 동시에 위원 3인을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함.
우 위원은 기히 파견된 오족의 위원과 일치 행동함.
4. 전제 항의 요구가 실패될 시에는 일본에 대하야 영원히 혈전을 선함.
차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오족이 기책을 임치 아니함.
https://namu.wiki/w/2.8%20%EB%8F%85%EB%A6%BD%20%EC%84%A0%EC%96%B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