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되, 휩쓸리지 않는 것

강변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by 글터지기

3월의 첫날 아침이었습니다. 달력이 넘어가는 소리가 괜히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아침 식사로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라는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을 후루룩 들이켜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소박하게 하루를 열고, 잠시 책상에 앉아 브런치 책방에서 선물해 준,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를 펼쳤습니다.유쾌하면서도 톡톡 튀는 문장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니,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문득 '마음지기'와 커피 한잔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가까운 곳을 검색하다 보니 충주호 강변에 새로 생긴 '카페 호수'라는 곳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곳입니다. 강을 향해 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심지어 집에서는 4km 정도로 가까운 곳입니다.


도착해 보니 군용 천막으로 보이는 커다란 천막이 세 동이 나란히 서 있고, 강변 위아래로 배치된 건물 세 동이, 강변을 향해 통창을 내고 있었습니다. 창 너머로는 잔잔한 물결과 아직은 차가운 봄빛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손님은 우리를 포함해 두 테이블뿐이었습니다. 의자와 테이블은 가지런했고, 공간에는 불필요한 소리가 없었습니다. 어디에 앉아도 풍경이 주인이 되는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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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주문하고 통창 앞 소파에 앉았습니다. 가져온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강물은 말이 없고, 커피는 따뜻했고, 책 속 문장은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원주 외곽의 어느 커피숍 앞마당이 떠올랐습니다. 커다란 비닐하우스 안에 모닥불이 피어 있었고, 쌀쌀한 날씨에도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머물렀던 기억입니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기분, 그때의 따뜻함.


그날처럼 오늘도, 여기서 하루를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졸고, 다시 깨어 강을 바라보는 그런 하루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늘 우리 뜻대로만 흐르지는 않습니다. 옆 테이블에 도착한 두 커플은 제법 큰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나이도 어린놈이 그런다'는 말이 몇 번이고 튀어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문장이 끊기고, 집중이 흐트러졌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고요가 깨진 것 같아 잠시 마음이 어수선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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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중앙탑면, '카페 호수'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또한 이 공간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불평하고, 누군가는 강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습니다. 강물은 그 모든 소리를 품은 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흘러갑니다. 잠시 후 그들이 자리를 떠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공간은 조용해졌다가 다시 웅성거리고, 그렇게 하루를 채워갑니다.


우리가 바라는 완벽한 휴식은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어딘가엔 소음이 있고, 예상치 못한 말들이 스쳐 지나가고, 흐름은 자주 깨집니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다시 펼쳐 조용히 책장을 넘깁니다. 그 작은 선택 하나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근사한 휴식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휴식은 소란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소란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물처럼 흘러가되, 내 자리는 지키는 것. 흔들리되 휩쓸리지는 않는 것.


몇 년 만에, 아무 계산도 없이 그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도, 다음 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도 잠시 내려두고 말입니다.


그렇게 잠깐, 숨을 고르고.

그리고 다시, 조용히 나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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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중앙탑면, '카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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