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함이 준 선물

치료와 삶

이어폰이 사라졌다. ‘분명 주머니에 들어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고된 일주일을 마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주말이었지만 하루를 교육으로 힘들게 보낸 나였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트레스는 배가 되었다. 누군가 세미나실에서 오는 복도에 떨어져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상황. 짜증 섞인 발걸음으로 세미나실에서 나와야 했다. 돌아왔을 땐 이미 모두가 치료실을 떠난 후. 머릿속엔 언제 집에 가지라는 짜증 섞인 생각뿐이었다. 서둘러 짐을 챙겨 문을 닫고 나왔다.


그런데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보호자의 얼굴은 분명 기억이 났다. 그런데 환자는 내가 알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다른 분이라 하기엔 머릿속에 저장된 보호자의 얼굴이 너무 선명했다. 가까워지는 걸음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는 듯했다. 아닌가 하고 돌아서는 찰나


“선생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이 나지 않는 생각을 더듬어 보니 조금씩 떠오르는 한 환자. '이건 말도 안 돼!' 정말 머리가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환자와의 첫 만남은 병실에서 시작됐다. 처음 뵀을 때부터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눈빛만은 누구보다 반짝이는 환자이셨다. 병실에서의 짧은 치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기대에 보답하듯 곧 새로운 처방이 나왔다. 치료실로 내려와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머리만 돌려도 구토를 해는 바람에 휠체어도 탈 수 없어 이동형 침대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치료실로 이송된 후에도 침대로 옮기기 조차 어려워 두 세 사람이 도와 간신히 옮길 수 있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는 언제 구토할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운동을 이어 나갔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치료의 진행은 더디기만 했고, 다리 조금 움직이는 것 외에는 큰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치료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 퇴원 날에 가까워져만 갔다. 헤어짐을 준비해야만 했다. 회복에 대한 기대보단 걱정만 남겨 주었던 그 환자. 내 기억 속에 남겨져 있던 그분은 그런 환자였다.


시간은 흘러 그 환자와 함께 했던 병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새로운 병원에 들어가고 적응하는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환자를 만나고 보냈다. 숱한 만남과 이별 속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지나갔다. 흘러가는 시간은 왜 그리도 무심한지. 환자에 대한 기억을 차츰 지워 주었다.

그러던 와중에 교육을 들으러 가게 되었다. 꼭 들어야 했던 필수 교육이라 함께하던 동료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이전 병원으로 교육 장소를 선택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신청한 교육이었다. 그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꿔줄 만남을 만들어 줄 것 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운명처럼 그 환자와 만나게 되었다.


계속 구토를 했던 탓일까 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살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처음에 보았던 반짝이는 눈빛 그대로였다. 전에는 타지 못했던 휠체어에도 편안하게 앉아 계셨다. 그것 만으로도 너무나도 큰 변화였다. 한참을 멍하니 보다가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솔직히 운동 기능에 큰 변화가 있을 것 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는 환자였다. 그만큼 기대감 없이 움직여본 것이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상상 이상의 근력으로 팔과 다리를 스스로 들어 올리셨다. 보호자 분께 여쭤보니 서고 걷는 연습도 시작하셨다고 하셨다. 심지어 그 주에 진행한 검사에서 인지도 거의 정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순간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집어넣어야만 했다.


눈물을 차분히 부여잡고 보호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이전에 입원했을 때보다는 한결 여유로워진 보호자의 목소리에선 치열했던 그간 여정이 담겨 있었다. 퇴원 후에도 구토는 이어졌다고 한다. 재활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강한 분이셨다. 어차피 사라지지 않는 증상이라면 극복하기로 한 것이다.

‘운동하고 구토하고, 운동하고 구토하고, 운동하고, 운동하고, 운동하고, 구토하고.' 구토를 하더라도 운동을 이어갔다. 점차 구토의 빈도가 줄어들 때쯤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운동기능이 돌아오는 신호였다. 운동기능의 회복만큼 언어기능의 사용 정도가 늘어났고 심리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검사를 받을 때쯤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과학은 많은 것들을 단정 짓게 해 준다. 의심하는 것이 과학이라 이야기 하지만 통계와 수치는 우리를 한계에 가두어 놓을 때가 많다. 나도 과학이 만들어 놓는 경계선에 갇혀 그 너머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다양한 검사가 가져다주는 근거는 의료진을 통해 예후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의료진이 전달해 주는 예후를 바탕으로 치료한다.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가장 근거 있는 회복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통계라는 확률적 근거가 있는 만큼 대부분은 그 사실이 맞는다. 이미 환자와 보호자들도 전해지는 이야기들로 어렴풋이 깨닫고 우리에게 온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내가 겪은 이 선물과 같은 사건이 그렇다. 우리에게 가능성은 선물과 같다. 안에 무엇이 있을지 열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가져다 주지만 반대로 큰 기대감을 안겨준다.


언제나 나의 치료는 불안하다. 동시에 큰 기대감을 가져다준다. 지금까지의 사실을 뛰어넘을 과학의 발전이 치료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으로 보내준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 날 이 오기 전까지 나는 이 불안감과 기대감이 주는 선물을 열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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