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만남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이름을 잃어버리게 되는 사람이 한 명 생겨난다.
‘보호자’
신경이나 심혈관 계통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움직임이 제한되어 낙상 고위험군에 속한다. 따라서 입원 기간 중 1인의 보호자가 상주한다. 긴 시간의 재활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부분 간병인과 활동보조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집으로 퇴원한다고 쳐보자. 그렇더라도 몸에 남은 장애로 남은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의 손으로 직접 돌봐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가족들이 직접 간병하는 경우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정말 감동스러운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입장에서 볼 땐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환자도 장애를 가진 삶이 처음이라지만 보호자에게 또한 마찬가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를 침대 및 휠체어에서 옮기는 법, 가래가 생기면 입과 목관을 통해 흡인기로 뽑아내는 법, 삼킴 장애로 인해 꽂아 놓은 콧줄로 식사를 넣어주는 법. 말로 해도 끝이 없는 일들을 직접 물어보거나 다른 보호자가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배워야 한다. 심지어 전공분야의 사람들도 수년 동안 배운 의학용어를 들으며 내 가족에게 들어가는 약의 이름과 치료 방법까지 보고 익혀야 한다. 잠이라도 편히 잘 수 있는가. 환자 침대 옆의 좁은 공간에서 보호자용 침대를 깔고 새우잠을 청한다. 이 마저도 새벽에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의료진과 소리를 질러 대는 섬망 환자로 인해 눈을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사실상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무보수로 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모든 건 환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름을 불러도 환자의 이름을 부르게 되고, 설명을 드릴 때도 누군가의 보호자님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그들의 이름을 들을 기회조차 없다. 그들의 수고를 누군가는 알아주어야 하건만 하루에도 수 백, 수 천명이 오가는 병원에서 이름 석자 기억 속에 남기는 것도 쉽지 않다.
암 환자의 보행 의뢰가 들어왔다. 처방을 보아하니 보행기로 컨디션 유지만 진행하면 되는 환자였다. 암 환자들은 비교적 신체 기능은 잘 보존되나 계속되는 항암치료가 반복된다. 따라서 무리한 운동보다는 컨디션 보존을 위한 낮은 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이 필수다. 그래서 종종 기능은 떨어지지 않더라도 컨디셔닝 목적으로 처방 의뢰가 들어오곤 한다. 이번에 의뢰가 들어온 환자 또한 오래 걷기 힘들어 휠체어를 탔을 뿐 걷는 데 큰 문제가 없으셨다. 그렇다 보니 치료시간 대부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항상 표정이 밝은 분이셨다. 힘든 병원 생활에도 웃음을 잃지 않을 뿐 아니라 하루 종일 일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며 오히려 나를 자리에 앉히려 하셨다. 나도 그런 장난 섞인 배려들이 고마워 치료 시간이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항암치료를 받고 오셨는지 몇 걸음 걷지 못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못하신 날이었다. 얼마 걷지도 못한 채 걷다가 서는 걸 반복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저도 지치셨는지 거친 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으셨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조용히 앉아 쉬어야만 했다. 조용함이 이어지던 중 적막을 깨는 건 환자의 조용한 목소리였다..
치료시간에는 하지 않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몇 년 전, 남편이 수술을 하게 되어 꽤 오랜 기간 간병을 하셨다고 한다. 슬하에 자식까지 있으셨으니 그 간병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당연했다. 그렇게 힘든 병원 생활을 어찌어찌 마무리해가던 중 자제 분께서도 사고를 당해 다치게 되셨다고 한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연달아 이어진 가족들의 병치레로 인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간병을 이어 나가셨다. 그 긴 시간 중에 자신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한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이름을 며칠 만에 듣기도 하고 주변에 아무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 것만 같았다고 하셨다. 그래도 본래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잘 버티며 드디어 기나긴 간병도 끝이 났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늘도 무심하다. 몸이 좋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서 알려진 비보. 암이었다. 쪽 잠자며 고생하던 지난 세월 때문인지 몸에서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들었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자라고 있던 것이었다. 항상 치료시간에 가득하시던 얼굴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힘들었던 시간만이 비쳤다.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게 말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으셨나 보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보였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사랑하는 남편이요, 토끼 같던 자식이 아프다고 하니 만사 제쳐 놓고 헌신을 바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몸의 아픔 일뿐. 그저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환자의 보호자로 잊혔던 이름이 환자가 되어 새겨질지.
다행히 몸 상태는 호전되셨지만 치료는 지속해야 했다. 퇴원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상위 병원으로 가게 되셨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는 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담아 주셨다. 나도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웃음을 보냈다. 보내 드린 뒤 몇 달간은 먹먹함이 지속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입원기간이 길어질 것 같은 환자를 만나면 우선적으로 보호자 분들께 홍삼, 산삼, 인삼 등 좋은 것들은 먼저 찾아드시라고 권유한다. 환자를 운동시키며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알려드린다.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들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드려 함께하는 치료를 만들어간다. 작지만 환자의 모습에 매 순간 울고 웃는 그들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나의 작은 배려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기쁨을 나눴더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라는 말에 더욱 공감한다고들 한다. 씁쓸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나도 이 말에 더욱 마음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각박한 사회에서 진심을 교감할 수 있는 진짜 내편. 그 한 명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 환자의 기쁨과 슬픔을 고스란히 나누며 환자의 편이 되어주는 보호자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지워가며 그 어려운 길을 동행한다.
혹시 길을 걸어가다 휠체어를 타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한 번쯤 그들을 부축하며 동행하는 분들의 얼굴을 한 번쯤 돌아봐 주길 바란다. 언젠간 환자의 이름이 아닌 그들의 이름이 기억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