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만남
세상 모든 만남이 즐거울 수 없듯 만남이 썩 유쾌하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모든 환자에게 친절과 웃음을 드리려 노력하는 편이다. 문제는 그 호의가 때때로 그들의 무기가 된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선생님에게는 반말과 얕잡아보는 말투를, 자신의 재력과 위치를 과시하며 노골적인 특혜를,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치료실임에도 내 환자만 중요하다며 다른 분들에 대한 배려를 잊은 이기심을. 이런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를 향한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민다. 워낙 많은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보니 호의적이고 싶지 않은 분들 또한 계시기 마련.
사실상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 치료사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병원 매뉴얼을 이야기하며 설득해야 한다. 때로는 의견조차 표현하기 어려운 채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화가 나는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렇다 한들 감정을 내비치어 보았자 결국 이 조차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 되어 돌아온다. 대부분은 속으로 삭히거나 동료에게 신세 한탄하고 만다. 이런 수많은 상황 속에서도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말.
“남자 치료사로 바꿔주세요.”
근력만 놓고 보면 남, 여 간 평균 50%에서 60%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는 단순 해부학적인 차이에 의한 것이다. 차별이 아닌 이해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마비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의 신체를 옮기고 움직여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키가 크거나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환자는 대부분의 치료실에서 남자에게 배정된다. 낙상에 대한 위험도를 줄이고 치료 간 치료사의 부하를 줄이기 위함이다. 치료를 배울 때 치료사가 다치지 않는 역학적 방법에 대해 먼저 배우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몸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는 근거와 이유가 있는 합리적 방안일 뿐 환자에 대한 차별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든 치료사에게 공평하게 환자가 배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치료를 힘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배정된 선생님은 무시한 채 무조건 여자가 아닌 남자 치료사로 배정해달라 우기는 환자나 보호자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치료실의 규칙 상 그러한 이유로 담당 치료사가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런 불만 사항을 제기한 환자, 보호자와 이어질 치료가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긴 힘들어진다. 환자와 보호자는 치료사를 믿지 못하고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사는 불만을 제기한 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부담감이 생긴다. 정말 불편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나는 남자이기에 이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절대 아니다. 남자가 배정됐기에 다행이라는 말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무리한 치료와 연결된다. 이런 요구를 들었을 때 생기는 거부감과 부담감이 치료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겨우 앉고 서는 환자를 번쩍 들어 올리는 듯한 모습을 보면 어떤 환자와 보호자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름 직접 치료를 진행하며 전문 지식을 조금 더 알고 있는 내 생각은 이렇다. 힘으로 하는 치료는 하수, 기술로 하는 치료는 중수, 이론과 섬세한 기술이 바탕이 된 치료는 고수다. 남자 치료사를 요구하는 발언엔 언제나 같은 이야기로 똑같이 응대한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치료를 진행하며 느끼는 바, 이 믿음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환자에게 걷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니다. 잘 일어서고 잘 걷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과정을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하게 근거에 맞춰 치료하는가에 따라 치료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강줄기가 중간이 막힌 채로 막힌 부분에서부터 하류까지 흘러가지 않듯이 과정을 무시한 채 나아가는 무리한 치료는 회복의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여자 선생님들의 치료 기술을 언제나 동료로서 존경으로 보게 되고는 한다.
치료실에서는 환자의 많은 스케줄, 치료사들의 배정 가능한 시간, 환자의 상태 등을 고려하여 치료사를 배정해야 한다. 만약 모두가 원하는 치료사에게 치료받으려는 이기심을 보이는 순간 병원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고 말 것이다. 단순히 담당자를 바꾸는 간단한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인 이유이다. 치료실에서는 규칙을 정해 놓는다. 무례한 요청에는 응할 수 없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치료사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간절한 마음에 던지는 무례한 한 마디가 환자를 향한 열의를 회의로 바꾸곤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치료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본인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에게 전해오는 그들의 상실은 누구보다 크다.
사람의 첫인상을 결정할 때 fMRI로 뇌를 촬영한 실험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처음 볼 때 뇌에서는 2개의 영역이 유의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편도체, 또 하나는 후대상 피질이다. 편도체는 감정 중추로 상대방이 나에게 위협이 될 상대인지를 순간 빠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준다. 이에 반해 후대상피질은 주관적인 가치의 결정을 통해 상대방이 나에게 가져다 줄 경제적 보상을 판단하는 중추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을 볼 때 처음부터 손익을 따지는 이기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비난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인간의 적응 방식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인상은 과학이다 라는 말이 통하는 이유 랄까.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관적 판단이다. 사람을 평가할 땐 시간을 들여 행동을 보고 결정해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환자와 보호자 분들이 극단적인 상황을 만나 객관적인 판단을 할 여유조차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순히 성별이나 나이처럼 처음 비치는 모습만으로는 우리가 환자를 만나기 위해 거친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느끼실 수는 없을 것이다. 치료사가 환자를 위해 거친 인고의 시간이 결코 작지 않다. 우리를 믿어 주셨으면 한다. 우리를 향한 신뢰만큼 그 이상의 치료로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