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만남
물리치료사에게는 면허 외에도 필요한 자격이 많다. 의사 면허를 제외하고도 4년의 수련 기간을 거친 후에야 전공의 자격을 얻을 수 있듯이, 우리에게도 분야별로 필요한 자격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경 물리치료를 할 때도 법적으로 규정한 자격이 있다. 이것이 인증된 사람에 한해서만 관련 치료의 시행을 넘길 수 있다. 시행을 넘긴다는 건 해당 치료가 금전적인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실력과 가치를 금액이라는 수단을 통해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취득 시기는 다르나 신경 물리치료를 하는 분이라면 모두 가져야 할 만큼 필수적이라 볼 수 있다.
이 자격이 있는지를 묻은 질문으로 우리 업계에선 흔히 ‘써티 있어?’라고 묻는다. Certification(증명서)라는 단어의 약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질문 하나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한다. 이 평가가 취업으로 연결되니 임상 경력이 낮은 사람일수록 간절해지는 자격이 된다. 문제는 취득 과정이다. 신경 물리치료뿐 아니라 정형, 심폐, 로봇 등 모든 교육이 근무하는 평일을 피해 열린다. 즉 교육을 듣기 위해선 평일에 근무를 마치고 주말을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평일 교육이 열리기도 하지만 병원에서 허락을 해주는 선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교육을 주말에 들어야만 한다.
내가 간절히 고대하던 교육이 열렸다. 모든 병원이 자격을 갖춘 사람을 희망한다. 때문에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듣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대부분 임상 3년 차 이상부터 교육을 들을 수 있다 보니 교육 명단에 이름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매일 교육 일정을 살피던 중 좋은 기회로 조금 일찍 듣게 되었다. 명단이 발표된 날, 환호성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일정을 보자마자 입이 다물어졌다.
시 간 표
금요일 : 오후 6시부터 8시 이론 / 8시부터 10시까지 실습
토요일 : 오전 8시부터 12시 이론 / 오후 1시부터 8시 실습
일요일 : 오전 8시부터 12시 이론 / 오후 1시부터 8시 실습
일주일로 끝나는 과정이라면 정말 좋았을 테지만 법률로 정한 이수 시간이 있다. 때문에 5주의 교육과 3주의 실습과정이 필요했다. 나름 몸과 머리를 함께 써야 하는 직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온전히 휴식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을 버티기가 너무 힘들다. 하지만 나에게 2달 동안 그런 휴식은 주어지지 않았다.
첫 주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를 듣기 위해 퇴근을 하고 1시간 거리의 병원으로 향했다. 퇴근길을 뚫고 가면 수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한 주의 고단함 때문일까, 깜빡깜빡 졸면서 열심히 필기를 한다. 필기가 끝나면 치료실로 넘어가 실습을 진행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수업과 실기. 주말에는 실습 때 실제 환자를 치료하기 때문에 더 많은 땀과 체력을 요했다.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버스에서 졸다가 정류장을 지나치기 일수였다. 월요일이 되어도 피곤함은 가시지 않아 퇴근시간만 노려보고 집으로 달려갔다. 4주간의 과정을 마치고 난 후 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제 주말을 즐길 수 있다는 해방감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이제 3주간의 실습기간이다. 병원에서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며 논문 형식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내야 한다. 이 보고서가 통과되지 않는 다면 두 달의 모든 수고는 의미 없게 되어 버린다. 사실 기존에 이 과정을 거친 사람들의 자료가 있기 때문에 작성 자체는 어려운 편이 아니다. 치료도 치료 시간 내에 사진을 찍고 적당한 사진으로 골라 놓기만 하면 번거로울 것도 없었다. 다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아무래도 나는 어려운 길을 자처해서 골라가는 재주가 있나 보다. 환자 선정부터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치료시간을 배정했다. 일반적인 치료시간인 30분을 넘어서 추가로 30분을 더 진행했다. 수 십장의 사진을 찍었다. 퇴근시간까지 늦춰가며 치료했기 때문에 옆에서 무슨 유난이냐고 눈치를 주기도 했지만 치료에 있어서 나를 한 단계 높은 위치로 보내줄 것만 같았다.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3주를 이렇게 치료하다 보니 환자와도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성장가도를 달리던 사람이었지만 하루아침에 시작되어 버린 병원에서의 삶, 이로 인해 진행되는 개인적인 문제와 해결 과정까지. 기존 짧은 치료 시간으로 인해 다 듣지 못한 환자들의 삶을 더 깊게 듣는다는 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는 단순한 교육 과제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환자와 보호자도 개인 과제에 의한 것임을 사전에 알려드렸음에도 거듭 감사함을 표하시는 덕에 의미는 배를 더해갔다.
치료의 결과가 나타날 때쯤 보고서도 마무리되어 한 주의 교육만 남았다. 마지막 주 일정은 남은 수업과 그동안의 평가였다. 먼저 택배로 보낸 보고서를 받아본 강사 분들께서 몇몇의 평가를 진행하셨고 그중 잘 된 보고서를 택해 하루의 여유를 주고 발표를 준비시키셨다. 이런 당첨되었다. 잘 된 보고서라는 것에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밤늦게 발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숙제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발표까지 마치니 정말 모든 일정이 끝나버렸다. 열심히 달리던 중에는 언제 가나 했던 시간이었는데 종이 한 장 남겨놓고 추억 속으로 가버렸다.
한 여름 장마철 빗물에 흘러가는 봄 꽃잎을 바라보듯 흘러가는 시간을 느껴본다. 덧없이 남겨진 종이 한 장을 우두커니 보니 괜한 아련함이 뻗어 나간다. 이 한 장에 치료사의 자격을 다 담을 수 있을까. 하지만 두 달 간의 여정을 위해 기다린 몇 년의 애타던 순간, 두 달을 2년처럼 하루하루 보내던 지긋함. 조용히 쏟아지는 어둠과 함께 흘러 흘러 떠내려 간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준비일까. 기대가 문뜩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새로운 인연으로 만들어 주길 기대하며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