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만남
“선생님은 이 일을 왜 시작하셨어요?”
치료 중에 입이 심심했던 환자가 질문을 던진다. 평소에도 뜬금없는 질문을 잘하는 환자여서 위화감은 없지만 생각하지 않았던 질문이라 답하기 난감하다. 질문하는 의도는 대충 느껴진다. 면접관도 아닌 분께서 사명감 넘치는 대답을 원했는지 눈빛이 반짝인다. ‘환자를 위해서요.’ 같은 원하는 대답을 해주면 되겠지만 기대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짓궂은 마음이 든다. 계속해서 다그치는 환자를 향해 침묵의 웃음을 보여드린다. 아무래도 대답하기 전까지는 치료에 집중하기 힘들 듯하다. 나의 대답만 기다리는 그분께 차분하게 단어를 골라 답을 전한다.
“수능 점수가 원하는 데로 안 나와서요.”
예상 못한 대답이 나왔는지 한참을 황당해하던 환자가 큰 소리로 웃는다. 장난도 잘 친다며 나를 툭 치고는 치료를 이어 나간다. 나도 멋쩍은 웃음을 내비친다. 왜 그럴까. 난 사실을 전한 건데?
어릴 때부터 나도 내가 뭐가 될지 궁금했다. 이것저것 손을 댄 것은 많은데 정작 제대로 한 것이 없다. 운동도 선수 생활을 할 뻔하다 손을 뗐다. 공부도 조금 성적이 나와 깊이 해보려 했지만 갈수록 흐지부지 해졌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미술까지 한다 했으니 부모님 속에는 불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 결국 미술은 손도 대지 못한 채 끝이 났다. 물론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불안했던 청소년기에 가정형편마저 불안해지니 삶에 집중하지 어려웠다. 집도 학교도 내게는 편안한 곳이 되지 못했다. 마음 둘 곳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청소년기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때가 되어 버렸다. 잘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그런 시기였다. 이런 현실 도피를 반복하다 어느덧 나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당시의 나는 문과도 이과도 아니었다. 미술을 하겠다며 야심 차게 문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과 공부가 더 잘되어 있었다. 수능을 봤지만 원하는 점수가 나올 리 있었을까. 눈 앞에 놓인 성적표를 보며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재수를 한다고 더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적당히 문과에 속한 아무 과나 가기엔 미래가 너무 불투명했다. 앞도 뒤도 막혀 버린 나였다.
인생은 참 굴곡진 길 위에서야 제대로 보인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한참을 방황하던 중 누군가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물리치료학과는 어때?”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선택지였다. 병원에서 일한 다는 것을 빼고는 어떤 직업인지 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인터넷을 찾아보아야 했다. 검색을 통해 나온 내용들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만 대학이라면 나의 평생 직업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괜찮다는 설명 만으로 선택하기엔 조심스러웠다. 원서를 넣어야 하는 시기는 점점 다가오지만 마음은 주저하고 있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다 무심코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아! 나는 이미 물리치료사의 손길을 받은 적 있는 사람이었다. 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직업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이미 치료사의 손에 의해 지금처럼 걷고 있었다.
중학생 때 친구와 장난치다 계단에서 추락했다. 나름의 운동 신경으로 잘 착지했다 생각하는 순간. 발이 돌아갔다. 발목이 푹 꺾이며 알았다. 이건 부러진 느낌이다. 2번의 큰 수술과 고정을 해야 했다. 학교도 6개월을 못 가며 집에서 갇혀 있었다. 6개월 만에 발을 디뎌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그 발은 이미 내가 알던 발이 아니었다. 발을 지면에 대고 걷는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지 처음 알았다. 잘 구부려지지도 않는 무릎과 발목을 열심히 구부려 보려고 했지만 너무 아팠다. 억지로 무릎을 꺾어버린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께 의도치 않은 욕설만 남길뿐이었다. 그냥 되는대로 걸어볼까 했지만 평생 절뚝거릴 것 같았는지 어머니께선 다시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물리치료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부터는 순조로웠다. 아픈 걸 참고 꺾어 버렸던 것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기술적으로 관절 각도를 만들어 주셨다. 바로 땅을 딛고 걷는 것이 어려워 보이셨는지 물속에서 러닝 머신도 걷게 하며 세세하게 봐주셨다. 그렇게 계절이 하나 바뀌고 나서야 이전의 걷는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나니 이 직업을 선택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 일이라면 선택해도 굴곡진 내 인생에 무엇인가 하나는 남겨줄 것 같았다. 적어도 후회만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확신 속에서 물리치료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대학에 갔다.
물리치료사가 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 여태까지 손을 댔던 모든 것 중에 가장 몰두했고 가장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임상에 나온 지금까지도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가 아니라 즐거운 현재가 되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가장 의미 있는 선택이 되어 준 것만은 분명하다.
나에게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던 환자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이 힘든 일을 선택한 이유를 물을 때가 많다. 그들이 치료를 받으며 느끼기에도 힘든 일이었나 보다. 큰 사명감 없이는 버티기 힘들어 보일 만큼 말이다. 나의 시작이 무슨 대단한 사명감에서부터 나오진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내가 존경하는 분들 만큼의 명분으로 일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현장에서 환자를 만나며 더 이상 그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할 일이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될 사람도 있다. 힘들 더라도 계속 이 길을 선택하는 이유이다.
‘선생님은 이 일을 왜 시작하셨어요.’ 이 질문에 나오는 답변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어요?’ 이렇게 묻는다면 조금 다른 답변이 나올 것 같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