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만남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질문 하나 드리고자 한다. 여러분들에게 두 다리로 선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바쁜 일상 속 우리에게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일지 모른다. 오늘도 당연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이를 닦는다. 아침을 먹고 문을 나선다. 사람들 틈에 끼어 만석의 지하철을 올라탄다. 쏟아지는 태양 빛을 지나 회사에 도착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짐을 풀고 털썩 자리에 앉는다. 짧은 아침 시간 조차 우리는 쉬지 않고 일어서 많은 것들을 해낸다. 우리 자신이 일어서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고, 서고 걷는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표유류 동물의 대부분은 태어나자마자 걷는다. 생존 전략이다. 바로 걷지 못하면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게 된다.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방어수단이 가장 적은 인간만은 정반대이다. 외부로부터 우리를 지킬 날카로운 이빨도, 할퀼 수 있는 손발톱도, 단단한 뿔도 인간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포유류에 비해 서고 걷는 것이 가장 오래 걸린다. 목을 가누는 데만 3~4개월이 걸린다. 배를 밀고 네발로 기려면 8개월이 걸린다. 일어 서기까지는 무려 10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걷는 건 일 년이나 지나야 가능하다. 일 년의 시간 동안 부모의 품에서 보호를 받으며 발달한다. 이 과정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한 만큼일 년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왔던 것들이 이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는 기적과 감동이 되어 다가왔을 것이다. 이 사실만 기억해도 더 이상 선다는 건 사소한 동작이 아니게 된다.
사람은 두 다리로 일어섰기 때문에 어떤 생물보다 지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야기하기도 한다. 신체뿐만 아니라 뇌도 출생 시 불완전한 모습을 갖고 있다. 뇌는 계속해서 변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수초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신경 신호의 전달을 위해 단백질로 감싸주는 과정이다. 쉽게 말하자면 전기가 잘 통하도록 전선을 피복으로 감싸주는 것이다. 그 변화의 정점을 보이는 시기가 신생아부터 2세까지이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걸을 수 있게 되는 시기와 뇌의 성장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부터 걷는 행위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이 바로 서게 되며 얻게 된 가장 큰 산물은 손의 사용이다. 우리의 몸은 뇌에서 담당하는 구역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손이다. 그래서 뇌에 손상을 입게 되면 가장 쉽게 마비가 오는 위치 또한 손이다. 손을 통해 뇌 손상의 발병을 예측할 수도 있고 손상 정도를 파악할 수도 있다. 손의 가장 큰 용도는 도구의 사용이다. 이 한 가지가 다른 생명체와 비교되는 지적인 사고를 갖게 된 시작점이다.
선다는 것만으로도 얻게 된 또 하나의 선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효율성’. 네 발 동물과 두 발 동물의 에너지 효율성에 대한 실험이 있었다. 결과는 두 발 동물의 압도적인 승리. 이 효율성이라는 무기로 인간은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 단순해 보이는 동작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엔 부족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서는 것이 불가능해진 사람들. 이들의 세계는 어떻게 바뀔까? 두발로 섰을 땐 자유로웠던 두 팔이 이제 다리의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점점 사라져 가는 움직임으로 인해 단단했던 두 다리가 가늘어져만 간다. 병상에서 일어서지 못한 채 보름에서 한 달만 지나도 근육의 50퍼센트를 소실한다는 자료도 존재한다. 그만큼 우리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다리 근육이 소실된다는 사실은 발로 흐른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갈 힘을 잃는다는 이야기이다. 기계의 힘으로 일어선다 할지라도 혈압이 떨어져 자세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못한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이런 분들을 치료사의 손으로, 기구의 힘으로 서고 걷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눈물과 환희로 가득 찬다.
지금까지 복잡해 보이는 전문 지식까지 써서 설명하려는 건 내가 의미를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만큼 전하려는 마음이 간절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사실이 희망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적는 글은 그런 이야기이다..
한 번쯤 즐거울 것이 없는 아침. 우뚝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하루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