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의를 적시며

치료와 삶

축축한 환의. 처음 만난 환자분으로부터 느껴진 땀 하나만으로도 그분의 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약간은 긴장한 듯한 눈빛. 움직이지 못하지만 뭔가를 강하게 갈망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나의 새로운 환자는 근육병이었다. 점차 단백질이 감소하며 근육이 메말라 가는 병이었다. 근력을 확인하지만 팔 하나, 다리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 이 정도의 근력에서 큰 움직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제발 일상생활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나지막한 한 마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세 아이의 엄마였던 환자에게 아이들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간절한 것은 없었다. 그 간절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우리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일단 가장 우선적으로 시작해야 할 것은 스스로 돌아 누울 수 있어야 했다. 침대 위에서 생활이 길어질 만큼 스스로의 몸을 뒤척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욕창과 같은 2차적인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어떤 동작보다 선행해서 진행해야 할 치료였다. 요소 하나하나를 세분화해서 동작을 만들어 드렸다.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이에 필요한 운동을 진행했다. 팔을 드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기에 몸을 반대로 넘기는 과정은 험난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5분 만에 이미 모든 옷은 젖어 있었고 그럴수록 절망감에 빠지며 우셨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동안 치료에만 집중하느라 그분의 감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치료뿐 아니라 절망에서 나오게 해 드리는 것을 포함해야 했다. 눈물을 본 후부터 치료시간 내내 끊임없이 웃으며 희망에 가득 찬 이야기를 쏟아냈다. 처음에는 진지했던 분위기가 바뀌어 어색해하시기는 했다. 그래도 차츰 이런 분위기에 적응해 가시는지 미소를 짓고는 하셨다.. 시간이 지나며 몸이 동작을 기억했는지 점차 팔을 올린 채 버티실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팔을 넘기는 동작이 가능해지고 돌아 눕기가 가능해졌다. 이미 이것 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처음 맛보는 성취감에 환자 스스로도 만족해하는 듯했다.

하지만 환자에게 한 단계 큰 도약이 가능하려면 여기서 더 긍정적인 생각을 불어넣어야 것만 같았다. 조금 이르긴 했지만 수준을 높여서 앉고 서는 과정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다행히 여러 가지 수치도 점차 안정되고 있는 과정 중이었다. 이 덕분에 가능했던 치료였다. 치료용 테이블과 나의 단단한 지지를 받으며 조금씩 몸의 중심이 올라갔다. 점차 높아지는 몸에 무서움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점점 일어나는 몸을 거울로 보며 반짝이는 눈만큼은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이로서 처음 서게 된 날, 이번에는 절망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보이셨고 말 그대로 펑펑 우셨다. 치료시간이기에 전해질 수치에 문제 생긴다며 장난치듯 달래 보았다. 진정시키려 해 보았지만 세상 그 누가 그 벅찬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세 명의 아이에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감만큼이나 얇아진 다리 근육에 힘을 주고 있었다. 치료는 순조로워졌다. 자신감이 붙으셨는지 치료시간 외에도 간병인 여사님과 따로 연습하며 할 수 있는 숨겨져 있었던 동작들도 찾아오셨다. 치료 시간에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태도로 임했다. 나도 그 모습에 뭉클해 다른 어떤 시간보다 열성적으로 임했다. 그렇게 않고 서기를 반복하던 중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발자국을 떼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날 땀으로 적시던 환의는 드디어 환희의 눈물로 적셔졌다.


우리가 발자국을 떼며 나가는 만큼 퇴원 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여러 가지 치료가 병행되어야 했기에 바라던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호전을 보여주어 큰 병원이 아닌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도 가실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의 간병을 받으며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훨씬 마음이 편해 보이셨다. 치료 마지막 날. 나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며 나를 불렀고 처음에 봤던 긴장이 이제는 환한 미소가 되어 사진 한 장으로 남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나 우연히 다른 환자를 맡게 된 간병인 여사님을 통해 환자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퇴원 후 몇 달 간의 치료 덕분에 이제 보행기를 통해 혼자서도 걸어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꼭 다음엔 걸어서 치료실에 찾아오겠다던 그 다짐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나와 환자 모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한참 동안이나 대화를 나눴다. 그 이후로 연락이 되지는 않았다. 소식이 궁금할 때면 사진을 본다. 핸드폰 속 사진을 볼 때면 그 미소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처음 땀으로 젖은 환의에는 절망만이 가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땀을 희망의 눈물로 바꾸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환의를 적셔가며 움직였던 그때의 나날. 언젠가 그 모든 순간이 나의 행복이었더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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