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가래로 인해 그르렁대는 통에 숨 쉬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불편해진다. 밤새 가래를 뽑았는지 눈에 피곤함이 가득한 보호자가 침대 앞에 앉는다. 목관만 뽑아도 행복할 것 같다는 보호자. 평생 아무렇지도 않게 쉬었던 숨이 이렇게 쉬기 어려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며 말을 이어간다.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언제 넘쳐도 이상하지 않은 환자의 가래가 손에 묻은 채 치료를 시작한다.
한국에서 호흡이 치료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주된 물리치료의 영역은 크게 중추 신경 환자와 근골격 환자로 한정되어 있었다. 심장과 폐질환 환자에게도 치료가 필요함에도 그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아 중요 순위에서 밀려나곤 했다. 그랬던 호흡과 심장 재활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최근 몇 년 동안 하나의 영역으로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각 병원에서 심장과 호흡치료를 위한 센터들이 생겨났고 이에 걸맞은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이 생겨났다.
나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가고자 교육의 대열에 합류했다. 교육 신청이 선착순이다 보니 새벽 12시까지 기다려 마우스를 미친 듯이 눌러야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교육을 듣기 어려워 토요일 아침에 부산으로 내려가 1박 2일의 교육을 듣고 기차 타고 올라오는 일정을 몇 주 동안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쳤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의 나에겐 그럴 만큼 너무 듣고 싶었던 교육이었다. 아직도 심장과 호흡과 관련해서 들어야 할 교육이 산더미이다. 그래도 저런 열정적이었던 시간 덕분에 사람의 호흡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호흡은 산소의 섭취와 이산화탄소의 배설이 반복되는 과정으로, 사람이 에너지를 얻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사람이 에너지를 만들려면 3가지 태엽이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호흡, 심장 박동, 근육의 수축.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망가지게 된다면 잘 돌아가던 태엽이 삐그덕 거리게 된다.
단순하게 폐질환 환자가 아니라 다른 질환의 환자라도 호흡에 문제를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중추 신경 환자들은 호흡이 많이 망가져서 온다. 뇌와 척수라는 중앙 관제탑이 무너지다 보니 호흡 유지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결과적으로 이미 중환자실에서부터 기도를 절개해 목관을 달고 나오게 된다. 숨을 잘 쉬게 하기 위해 달아 놓은 목관 이건만. 이로 인해 점점 더 가래를 만들어낸다. 목관을 달아 놓은 만큼 가래가 많아진다. 목관도 결국 우리 몸에서 인식하기엔 이물질이기 때문이다. 가래를 혼자 뽑지 못해 흡인기를 넣는다. 흡인기는 결국 상처를 만들어 낸다. 상처는 또 염증을 만들어 가래를 만든다. 그 덕에 숨쉬기는 힘들어지고 악순환이 반복된다.
우리의 일은 이 악순환을 끊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가래를 흡인기가 아닌 치료를 통해 뽑아준다. 숨을 여유롭게 쉬게 해 준다. 이것 만으로도 환자가 편해짐은 물론, 밤새 가래를 뽑아주어야 하는 보호자의 수면 시간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다. 이런 것들이 해결되고 나면 잘못된 호흡을 바로 잡아준다. 이미 기능을 잃을 데로 잃어버린 폐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 기능을 잃은 만큼 폐는 쪼그라든다. 적어진 폐활량과 기능을 잃어버린 호흡근으로 인해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헉헉거리게 된다. 척수 환자의 경우엔 호흡근으로 연결된 신경이 망가져 애초부터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제대로 된 호흡을 함으로써 운동 능력이 향상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모든 치료의 기초이다. 이런 기초적인 것들이 해결되어야 삶으로 돌아가는 주춧돌이 된다. 이 주춧돌을 쌓기 위해 손에 가래 묻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흔히 숨결을 표현할 때 숨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딘가의 기운을 느낄 때 그곳의 숨길을 느낀다고 한다. 그만큼 숨이 드나드는 길을 느낀다는 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숨이 드나는 다는 것은 그만한 의미를 가진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근본이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생명의 원천을 만들어 주는 것을 포함하게 된다. 사소하고 작아 보일지 모른다. 호흡 치료를 하는 몇 번의 손길이 누워있는 환자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작은 동작이 만들어낼 작은 숨길이 그들이 걸어갈 삶의 길을 열어갈지도 모른다. 그 믿음 하나가 나의 손길을 그들의 숨길로 연결시켜주는 통로로 만들어준다. 나는 그저 그 믿음을 가지고 오늘의 치료를 할 뿐이다. 그것이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