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만남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온갖 평가와 검사를 받게 된다. 혈관을 찾아 몇 번씩 피를 뽑고, 각종 영상 촬영이 이어진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검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 상태를 구석구석 살핀다. 이 모든 과정을 뚫고 나서야 드디어 치료를 시작하나 싶었는데 본격적인 평가는 이제 시작이다.
대학교 시절부터 진단학은 높은 학점을 자랑할 만큼 중요한 과목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어려운 난이도와 만만치 않은 실습시간으로 유명했다. 임상에 처음 나와서는 평가 방법을 하나, 하나 다시 교육받을 정도였으니, 그 중요성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 오죽하면 평가만 잘해도 치료는 알아서 된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평가는 받는 사람에게도,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각 병원별로 평가 항목과 순서는 대부분 정해져 있다. 문제는 각 질환과 증상에 따라 진행되는 수많은 평가의 종류와 진행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론적인 부분을 숙지했다 한들 실제 적용은 또 다른 법. 가능 여부를 판단하여 올바른 감독 하에 평가를 시행해야 한다. 의학은 객관적 근거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어떤 시행자가 진행하더라도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 결과 값이 다른 의료진의 각종 검사 결과와 이어져 합리적 근거를 도출할 밑바탕이 된다.
예를 들어 보자. 편마비인 환자에게서 마비 측이 아닌 정상 측 근력이 떨어진다 하면 문제가 있는 사항이다. 그러므로 합리적 원인을 도출해 내야만 한다. 때문에 나의 평가뿐 아니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검사하신 항목들을 해석 가능해야 한다. 또한 해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리적 도출 과정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 항목은 너무나도 많다. 근력, 관절 가동 범위, 경직도, 균형 정도, 감각, 현재 가능한 기능의 범위, 보행 여부, 보행의 속도, 가능 보행 거리, 폐활량과 최대 기침 유속 등 가장 기본적인 평가 항목만 나열해도 10가지가 넘는다. 뇌손상의 경우 소뇌 손상, 파킨슨병, 뇌성마비 등 각 질환별로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 존재하며 척수 손상의 경우 근력 평가의 점수 집계 방식부터 다르다. 경추, 흉추, 요추, 천추 부의 손상 단계와 손상 정도에 따라 진단명이 달라지니 각 항목별로 평가해야 하는 항목과 점수 집계 방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추가적으로 점수로 집계할 수 없는 호흡 패턴이나 보행 패턴도 있으니 양적인 평가가 아닌 질적인 평가는 덤으로 치료하는 순간마다 영상으로 남기거나 메모를 남기며 체크해야만 한다.
말로 해도 끝이 나지 않을 분량이지만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평가 시간은 처음 만나는 30분. 한 달의 치료를 위한 평가가 주어진 시간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모든 과정이 저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어지는 치료 시간마다 지속적으로 평가가 진행되기는 한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평가와 치료를 분리하는 경향이 있어서 평가를 하면 치료가 늦어진다는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 평가가 많아질수록 불만이 많아진다. 하물며 담당 주치의의 추가적인 평가 요청이나 특정 평가를 매일 확인해야 하는 환자라면 불만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평가에 대한 압박은 시간뿐만이 아니다. 각 직군에서 평가한 결과는 의료 기록이 남으므로 모든 항목은 정확해야 한다. 장애평가라도 진행되는 날이면 바쁜 와중에도 다른 파트의 선생님과 몇 번씩이나 통화를 주고받으며 점수를 확인 또 확인한다.
사실 환자와 보호자가 인지하지 못할 뿐 공식적으로 공지하는 평가를 제외하고도 우리는 매 순간 평가를 하고 있다. 치료실을 입장할 때 취하는 자세, 치료 테이블로 옮기는 행동 패턴, 치료 시 느껴지는 근육의 긴장도, 받아들이는 감각의 여부, 의식적 활동과 무의식적 활동의 차이, 운동 시 이루어지는 호흡의 빈도와 강도. 환자의 모든 것을 민감하게 확인하며 기록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30분 동안 오감을 열고 환자에게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치료는 더욱 세심해질 수 있다. 매 순간마다 환자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 어쩌면 평가라는 이름 하에 보이는 치료사의 관심일지 모른다.
평가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는 극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본인 스스로도 마비로 인해 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몸의 동작이 나온다. 느껴지지 않았던 감각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는 잠재력을 발견한다. 이 순간, 치료를 시작하기 위한 평가는 희망의 시작으로 바뀌곤 한다.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임상 생활. 희망을 찾기 위한 평가라는 사투는 앞으로도 꾸준하게 어려운 과제가 되어 나를 따라다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