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원과 만남

덜거덕 거리는 휠체어와 손 끝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는 주사 바늘,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게 만들어 주는 목관과 보기만 해도 코끝이 아플 것만 같은 콧줄, 그리고 난생처음 휠체어를 몰아보는 어색함에 긴장감을 숨기지 못한 채 다가오는 보호자.


새로운 환자를 배정받았다. 환자와 보호자를 자리에 불러 앉히고 차트를 읽는다. 뇌출혈에 발병 시기는 고작 한 달 남짓, 중환자실에서의 고비를 넘기고 보니 찾아온 마비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환자에 대한 대략적인 파악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평가를 시작한다. 평생을 아무렇지 않은 듯 움직였건만 손, 발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천근만근. 아픈 곳은 있는지, 굳은 관절은 없는지 문제를 확인하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보호자의 마음은 더욱 타 들어간다.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건만.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서는 앉는 것조차 어려운 지금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대략적인 평가를 마무리 짓는다. 이어서 앞으로 받게 될 치료와 시간표를 전달한다. 시간표는 함께 겪어 나갈 한 달여간의 여정이 시작됨을 알리는 안내판 같은 존재. 한 장의 종이를 받으며 환자와 나의 만남은 시작된다.


몇 해 전, ‘닥터스’라는 신경외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 있다. 당시 방송을 챙겨보던 중 인상 깊게 본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의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경추 1, 2번이 다치는 큰 사고를 당한다. 출혈을 잡고 핀을 박는 큰 수술을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희망 가득한 모습으로 해당 에피소드가 끝난다. 언제나 그렇듯 텔레비전 속 화면은 드라마틱한 연출에 웃음과 감동이 가득하다. 혹시 그 후의 삶은 어떨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우리의 이야기는 드라마가 끝나고부터 시작이다.

치료실에서 나를 만나게 되는 환자의 대부분은 서서히 찾아오는 다른 병들과는 조금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와 내 가족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불현듯 닥쳐온 사고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을 병원으로 휩쓸어 가버린다. 수술실로 들어가 버린 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기다린다. 1시간이 10년간처럼 느껴지는 기다림의 시간. 오랜 기다림 끝에 고비를 넘겼다는 의사 선생님의 위로의 한마디가 건네 온다. 다행이라는 듯 한 숨 넘기는 것도 잠시, 중환자실에서 나온 환자와 보호자는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린다.


다들 살면서 입원이라 해봤자 길어도 2주 정도면 병원 생활이 얼추 마무리 짓지 않을까? 하지만 재활을 시작하는 사람의 경우, 모든 병원을 합쳤을 때 평균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라는 기간을 거친다. 이것도 입원 기간이 짧은 환자의 이야기일 뿐 그 이상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병원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은 한 달에서 석 달 정도까지 가능하니 적게는 6번에서 많게는 12번까지 병원을 옮겨 다니는 생활을 한다. 오죽하면 재활 난민이라는 표현이 생겨날까. 더욱이 내가 근무했던 모든 병원이 급성기(초기) 환자를 보는 병원인 만큼 새로운 환자를 본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을 시작하는 첫 도입부 같은 것이다.

모든 이야기의 도입부는 앞으로 펼쳐질 것들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 그리고 수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차라리 책이나 영화는 두께나 상영시간으로 분량이라도 예측할 수 있다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얼마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치료를 시작하는 이들의 감정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긴 여정을 나아가야 만큼 준비라도 철저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준비도 못한 채 시작되는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처음 보는 낯선 치료실에서 얼마나 궁금한 것이 많겠는가. 치료를 시작하며 기억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우리 환자의 예후는 어떻게 될까요?’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까요?’ ‘우린 걸을 수 있을까요?’ 그중에서도


“선생님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날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언뜻 보면 간단한 질문이다. 그렇지만 가장 많은 것을 담고 있는 한 마디이다. 질문을 하는 눈빛, 억양, 손동작 속에 많은 것들이 전해져 온다.

솔직히 현실은 냉혹하다. 모두가 드라마처럼 희망찬 모습으로 수술실을 나왔을지는 몰라도 신체에 남은 장애를 보는 매 순간 느껴지는 절망감을 억눌러야 한다. 저 질문에는 이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비록 숨겨진 마음을 느끼더라도 첫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안심을 시켜 드리고 첫 만남을 마무리하곤 한다.

사람의 신체를 다루는 일이기에 명답은 있을 지라도 정답은 없다. 모두가 같은 병처럼 보일지 모르나 손상 부위, 나이, 성별 등에 따라 증상과 예후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하물며 살아온 방식이나 가정형편도 모두 다르다. 치료과정은 이러한 변수에 맞춰 계속해서 변해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 물리치료사로서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도 법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고 애매한 답변뿐이다.


의학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근거 없는 희망은 희망고문이 되어 더 큰 절망을 가져다준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입증되지도 않은 사실에 입각한 거짓을 알려줄 수 없는 이유이다. 이미 과학은 많은 통계와 자료를 통해 그들의 예후를 이야기해준다. 환자와 보호자도 이미 각종 자료를 찾거나 물으면서 어렴풋이 깨닫고 있을 뿐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인 답변과 희망적인 답변을 고르라면 주로 후자를 선택하는 편이다. 과학적인 근거를 벗어나지 않고 직업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테두리 안이라면 건네 드릴 수 있는 희망적인 말들은 얼마든지 있다. 당사자도 몰랐던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지금 가진 몸의 불편함보다 앞으로 치료를 하면 좋아질 것들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나아질 내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시켜 드린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발걸음 위에서 피어난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선생님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새로운 한 발을 내딛기 위한 질문이다. 희망을 피워내기 위한 한걸음을 내딛으며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을, 그리고 함께하는 오늘을 피워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