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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을 만나다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퇴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생과 사, 그 경계선 사이에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면 우리가 겪는 만남과 헤어짐은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사회라는 관계 안에서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해야 한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는 '입원과 퇴원'이라는 조금은 특별한 이야기로 그 관계를 만들어 간다.

     

 한 명의 환자가 입원했다. 불청객처럼 찾아온 마비 때문에 언제나 보호자가 옆을 지켜주고 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날벼락같은 상황. 당황스러운 것은 환자나 보호자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우리 세 명의 만남은 당황과 경계 그 어딘가 쯤 된다. 이런 만남에 익숙해진 나와 모든 것이 낯선 그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관계로 만난 우리. 이렇게 만들어진 특별한 인연 속에 함께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하루 한 시간도 안 되는 만남이지만 그 짧은 만남 덕분에 더욱 각별해지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 하지만 이런 만남도 잠시, 이런 시간을 겹겹이 쌓고 나면 우리는 헤어짐의 시간을 맞는다.     

 헤어짐은 독특하다. 시간의 양과 질을 모두 품는다. 그리고 품은 정도만큼 어렵게 한다. 만남 자체의 깊이는 깊지 않을지라도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그 시간만큼의 정이 넓게 펼쳐진다. 반대로 만남의 시간은 적더라도 감정의 깊이가 있다면 정은 깊게 베어 든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언제나 헤어짐은 어렵다. 짧으면 한 달, 길면 두 달. 살을 맞대면서 치료한 정은 넓으면서 깊다. 어린 시절 어미와 살을 맞댄 원숭이와 침팬지의 사회성이 더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듯 살을 맞댄 정은 각별하다. 각별한 만큼 헤어짐이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든 퇴원이라는 헤어짐은 찾아온다. 퇴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집으로의 퇴원과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 마비라는 중증 질환을 가진 환자이기에 많은 비율에서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다. 나는 병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급성기 환자를 주로 보다 보니 병원을 돌고 돌아 다시 입원하여 만나게 되거나 혹은 다른 병원으로부터 소식을 듣게 된다. 후자의 경우 아쉽지만 다른 만남이 있을 것을 알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의 인사를 보내드린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이루어졌거나 혹은 더 이상 병원을 전전할 수 없어 집에 간병 물품을 준비하고 집으로 가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집으로 향한다. 병원에서 나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축하할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많은 걱정을 남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장애를 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만큼 사회는 녹록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한 환자가 퇴원했다. 젊은 나이에 어디까지 회복할 수 있을까. 걱정 반 아쉬움 반으로 보내드려야 했다.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많기에 그만큼 걱정도 배가 되는 환자였다. 비록 평생 휠체어에서 평생 생활하게 될지 몰라도 조금 더 나은 조건에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아쉬운 마음을 품고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여지없이 흐르고, 여러 가지 소식을 통해 어느 곳에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을 수 있었지만 구체적인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2년의 시간이 지날 때쯤 이미 그 환자는 내게 오래전에 만난 환자가 되어 있었고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치료하고 있던 어떤 날.


“형”


 치료하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과연 걸을 수 있을까. 걱정만 남긴 그 환자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어떤 보조 도구도 없이 나를 향해 곧게 걸어왔다. 누구라도 사람에게서 빛이 나는 장면을 일생에 한 번쯤은 본다 생각했다. 나는 그 때라 자부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그때, 빛을 보았다.     


 나를 만난 혹은 만날 모든 환자가 이럴 수 없다는 것은 안다. 대부분 이 정도의 회복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도 안다. 대신 이제는 꿈을 꾼다. 나와의 헤어짐이 또 다른 기적을 어디선가 만들기 기대한다. 더 이상 내게 퇴원은 걱정만 남긴 헤어짐이 아니기에 희망을 남기는 새로운 시작점이다.


그렇게 오늘도 한 명의 회복을 염원하며 헤어짐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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